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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에디슨 나와야”…해방공간 과학잡지들의 절박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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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과학시대·현대과학 등

미 군정시절 잇따라 창간

“반드시” 절절한 마음 담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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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위대한 과학자가 여러분 중에서 나와야만 한다.”

강력한 희망을 담다 못해 어떤 절박함마저 엿보이는 이 글은 1947년에 창간된 학생용 과학잡지 <과학시대>의 편집후기에 실린 것이다. 이 문장의 바로 앞에 나오는 내용까지 보면 절박함이 더 생생하다. “과학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지금 새삼스럽게 말하지 않겠다. 독자 여러분이 더 잘 이해할 테니까…. 다만 여러분도 뉴튼이 되고 에디슨이 될 수 있다는 것만 부언해 둔다.”

일제강점기에 간행되었던 교양과학잡지 <과학조선>은 1933년에 창간된 뒤 ‘과학데이’를 제창하는 등 주목할 만한 궤적을 보였다. 그러나 민족운동적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우던 일제의 탄압을 받다가 친일 어용 성격으로 바뀌었고, 그나마 1944년에 종간되고 말았다. 해방 직전까지 나오던 <조선 과학시대>라는 잡지도 있었으나 필자 대부분이 일본인(창씨개명한 한국인이 포함되었을 수도 있다)이고 언어도 전부 일본어였다. 1945년 2월에 나온 19호를 보면 한국인 필자는 나비연구가로 유명했던 석주명뿐이다. 사실 <조선 과학시대>는 ‘은사기념과학관’(恩賜記念科學館)에서 펴내던 것이라서 처음부터 성격이 뻔할 수밖에 없었다. 은사기념과학관은 1926년 일본 왕의 결혼 축하 하사금으로 경성(지금의 서울)에 건립된 것이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뒤에는 일제가 정책적으로 과학기술 교육을 강조해 이 과학관이 조선총독부 박물관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한 뒤 1948년에 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남한은 미군정 치하의 ‘해방 공간’ 시기를 지냈다. 이때 나온 과학잡지가 학생용 <과학시대>와 성인용 <현대과학>이다. 둘 다 ‘현대과학사’에서 발행한 것인데, 도중에 발행소 이름이 ‘중앙공업연구소 연구회 출판부’로 바뀐다. 그러고는 1948년에 <과학과 발명>까지 창간해서 세 잡지가 모두 자매지로 나오게 되었다.

1947년 4월에 창간호를 낸 <과학시대>는 독자를 ‘중학생’으로 못박고 있으며, 필자들도 대부분 중학교 선생으로 재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몇가지 짚어야 할 점이 있다. 먼저 ‘중학교’란 지금과 같은 3년제가 아니라 6년제 학교를 의미한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고등보통학교’가 5년제 중학교로 개편되었고, 이것이 해방 이후 1946년에 미군정하에서 6년제 중학교로 다시 바뀌었다. 즉 이 잡지는 오늘날의 중고등학생에 해당하는 학생층을 모두 독자로 아우르려 한 것이다. 학제가 오늘날처럼 각각 3년제인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분리된 것은 1951년의 일이다. 중학교에 재직하는 필자들이 교사(敎師)가 아닌 ‘교유’(?諭)라고 표기된 것도 눈에 띈다. 교유라는 말은 교사의 일본식 표현이다. 일제강점기를 벗어난 지 몇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일본식 표현이 남아 있었다. <과학시대>는 한동안 교유라는 표현을 쓰다가 나중에야 ‘선생’(先生)으로 바꾸었다.

<현대과학>은 학생이 아닌 성인 독자층을 겨냥하여 낸 종합 교양과학잡지로서 <과학시대>보다 앞서서 1946년에 처음 나왔다. 권말 부록으로 ‘조선과학가총관’(朝鮮科學家總觀)을 연재하였는데, 이는 당시 국내에 있던 과학기술계 인물들의 명단을 분야별로 실은 것으로 이름, 나이, 출신지, 현직, 학력 등을 낱낱이 밝혀놓았다. 각 대학교 교수들과 군정청 및 연구소 등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총망라되어 있으며 20대 초반부터 60대 초반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30~40대인데 이들이야말로 해방 공간 이후 한국전쟁 시기를 거쳐 60년대까지 이 땅의 과학기술계를 견인한 세대였을 것이다.

이 잡지들의 간행에 깊이 관여한 인물이 있다. <과학시대>, <현대과학>, <과학과 발명>에는 공통적으로 ‘A.D.H.’라는 필명이 자주 눈에 띄는데, 본명으로 이미 많은 글을 쓰고 있기에 필진이 중복되는 모습을 조금이나마 줄여보려 한 것 아닐까 짐작된다. 바로 이 사람이 일찍이 일제강점기에 <과학조선> 발간에 참여했고 해방공간은 물론 그 이후 20세기 말까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계에서 활약한 안동혁(1906~2004)이다. 그는 해방공간에서 중앙공업연구소 소장을 지내며 앞에서 소개한 과학잡지들을 발간했고 한국전쟁이 끝난 뒤엔 상공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으며 그 뒤로는 노년기까지 한양대 화학과 교수로 일했다. 우리나라의 근대 과학기술계 발전에 기여한 바가 뚜렷해서 현재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16인 중 한 사람으로 올라 있기도 하다.(이 16인은 고려시대의 최무선부터 20세기 후반의 세계적인 물리학자였던 이휘소까지 우리 역사를 통틀어 위대한 과학기술인으로 선정된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의 과학대중화 역사 연구는 이 안동혁이라는 인물의 생애를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것으로도 상당 부분 성과가 나올 것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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