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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김세형 칼럼] 트럼프-김정은, 핵게임 앞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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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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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 우리가 북핵에 대해 알고 있는 진실은 두 가지다. 북한은 체제안보상 핵을 죽어도 안 내놓겠다는 것이며. 도널드트럼프정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핵을 뺏어내겠다는 것이다. 방패와 창처럼 모순이다.

북은 왜 그리 핵에 집착하는가.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처형(90년 12월 5일), 이라크 후세인, 리비아 카디피의 처형. 그리고 우크라니아가 크리미아를 빼앗긴 사건 때문이라 한다. 독재자가 핵을 놓으면 죽임을 당하거나 국토가 유린됐던 역사적 비극들이다. 미국과 선진국들은 독재자가 핵을 내려놓으면 안전보장, 생명보호를 하겠다는 협정서들을 써줬으나 결국 헌신짝처럼 버렸다. 김일성 패밀리가 끝까지 핵을 부둥켜안겠다는 것은 나름의 생존법이다.

김정은을 만나고 온 정의용 안보실장은 백악관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은 비핵화를 할 것이며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않겠다"는 김정은의 뜻을 전달했다. 김정은은 트럼프와 5월에 만나자는 시한까지 제시하고 백악관도 'OK'했다. 바야흐로 새 역사가 써질 흥분되는 시간의 흐름이다.

그동안 북은 불리하면 '비핵화는 통치유훈'이라며 궁지를 모면해왔다. 위의 설명대로 자신들의 핵의 논리가 있기 때문에 정말 비핵화 할까는 솔직히 믿음이 안 간다.

김정은은 불과 수개월 전만 해도 트럼프가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를 말하며 군사공격할 것처럼 말하자 망령 든 늙은 미치광이니 하며 욕을 퍼붓고, 북에 대한 선제타격론에는 털끝만 건드려도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저주했다. 그런데 무엇이 평창동계올림픽 즈음 사태를 180도 변하게 했단 말인가. 그이유는 유엔제재가 먹혀들어 목이 졸려 죽게 생겼기 때문이라는 분석에 일치한다. 핵이 없어 맞아죽든 유엔 제재로 굶어죽든 죽는 건 마찬가지다(우크라이나가 핵을 놓을 때 서방이 안 도와주면 죽을 처지였다). 죽게 생겼으니 손을 들고 나온 것으로 보는 미국은 김정은을 만나주더라도 진의확인 때까지는 제재를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번에야 말로 기어코 품에서 핵보따리를 뺏어내겠다는 각오다. 김정은은 비핵화에 정말 동의한다면 자신의 목숨과 체제를 지탱할 보호장치를 미국에 요구할 것이다.

과거 클린턴·오바마 정권에서도 비핵화를 말했으나 유엔 제재를 중국이 뒷구멍에서 메워주는 것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런데 장사치 출신 트럼프는 확실히 디테일에 강하다. 김정은이 핵실험, ICMB을 쏠 때마다 유엔 제재로 주리를 트는 압력을 높였다. 중국 등으로의 섬유 석탄 생선 등의 수출길이 완전 막히고 중국 러시아 아프리카 등지에 노동인력을 보내 하던 외화벌이도 숨통을 끊었다. 틈만 나면 중국도 위협했다. 무역보복, 제재조치를 중국에도 가하겠다고 해 북한 식당, 노무자들도 전부 쫓아내는 데, 미국에 협조하는 데 이르렀다. 칠흑 같은 밤에 바다에서 몰래 석탄, 광물자원을 팔던 행각까지 인공위성으로 잡아내 중국 홍콩 등의 선박을 제재 대상으로 묶어 올렸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공급하는 에너지 제품도 틀어막고 이제 마지막인 원유 공급파이프도 미국이 끈질기게 요구하고 나섰다.

김정은은 연기 피우는 쥐구멍에서 죽기 직전 비틀거리며 나온 쥐 신세가 됐다. 일단 항복이다.

핵게임엔 트럼프도 환영할 입장이다. 그는 국내적으로 섹스스캔들, 대선 시 러시아 협조를 캐낸 뮬러 특검의 칼날이 다가오고, 오는 11월 중간선거에 호재로 쓸 '한 방'이 필요하다. 핵은 트럼프나 김정은 둘다 벼랑 끝에서 잡는 구명줄인 측면이 있다. 성공하면 노벨평화상 감일 수도 있다.

미국은 첫 대면은 협상이 아닌 대화의 시작으로 보겠다고 말한다. 협상은 단칼에 상대의 진의를 파악해 진짜 비핵화를 확인하지 못하면 2차 대면으로 갈 명분이 안 선다. 북이 우리 측에 제시한 6개 조항은 정상회담, 핫라인, 비핵화 의지,북·미 대화 용의, 대화 기간 전략 도발 중단, 태권도시범단 평양 방문 등이다. 문재인 대통령 말마따나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김정은의 6개 조항에 대해 북한문제를 24년간 다뤄온 브루스 클링너(미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는 "우리가 너무나 많이 봤던 영화"라고 한마디로 평가절하했다. 그는 "1994년 제네바합의에서 2012년 2·13합의까지 북한은 무려 8차례에 걸쳐 교묘하게 국제사회를 속였는데 이번에는 입증할 정보를 달라"고 말했다.

이제 실제 해법을 보자는 것이며 말장난은 안 통한다는 결의가 대단하다.

핵게임은 미·북 대화, 남북 정상회담 투 트랙으로 전개될 것이다. 정상회담이 열리는 4월 이후 숨가쁘게 전개될 텐데 어느 것이 먼저인가.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일합은 미·북이 먼저하고 그다음 남북 정상회담은 미·북 정상회담의 밑거름 정도가 될 것 같다. 남한은 유엔 제재가 엄연한 마당에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 등 경제 지원은 하나도 못 한다. 인도적 지원이나 이산가족 상봉, 그밖에 말만 요란한 상징적 무대장치밖에 없을 것이다.

핵게임의 본론인 비핵화 프로세스는 북·미 간에 본격 논의되고 검증될 것으로 보인다. ICBM, 핵시설, 핵무기 등 한 가지씩 폐기할 때마다 북측 요구를 한 단계씩 들어주는 식이다.

특히 2005년 9·19 공동선언 후 NPT, IAEA 복귀를 약속해놓고 1년 후 1차 핵실험을 해버렸던 멍청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확고한 장치가 필요하다. 김정은은 NPT 복귀, IAEA 사찰로 복귀해 진의를 증명해야 한다. 핵사찰을 위한 물 샐 틈 없은 작전계획, 검증절차를 짜야 한다.

김정은은 2012년 2·29 합의로 사전비핵화조치를 약속해놓고 4월 은하3호 로켓을 발사해 한국을 속인 전례가 있다. 트럼프는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북이 미국에 줄 선물로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ICMB 개발을 접고,핵실험이나 로켓·미사일 발사를 않으며 북에 잡혀 있는 인질 3명을 풀어준다는 안(案)이 자주 거론된다. 그것은 북한핵을 완전하고도 불가역적으로 해체한다(CVID)는 트럼프 자신의 원칙을 스스로 차버리는 것이다. 미국은 안전하겠지만 일본과 한국은 핵위협에서 낙동강 오리알이 되고 만다. 미국이 자신만 안전하자고 하면 일본이나 서방 동맹국을 배신하는 것인데, 트럼프는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허락하는 날 트윗에서" 핵동결이 아니고 비핵화를 한다. 그때까지 제재는 계속된다"고 썼다.

홍준표 대표가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에게 "김정은이 남북 정상회담을 시간벌기로 악용하면 어떻게 할거냐"는 물음에 "정답이 없다"고 했다. 미·북수교, 불가침 선언 정도로는 김정은이 핵을 내려놓게 하는 안전보장 장치로는 미흡할 것이다. 그렇다고 한·미·일은 주한미군 철수 같은 조치는 수용할 수 없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미국이 김정은에게 북·미 수교 평화협정 같은 것을 해주고, 비핵화의 공백은 중국·러시아가 핵우산을 받쳐주게 하는 동북아시아 평화 구상 같은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남한과 북한을 연방제로 1국2체제로 하는 과거 DJ 구상을 제시하는 전문가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주의가 일국을 형성하기 어렵고, 이 경우 주한미군의 존재가 이상해져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무튼 최후의 궁지에 몰린 북은 시간을 벌어 틈만 나면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이 가장 강할 것이다. 김정은으로서는 남아공의 만델라가 핵을 폐기하고도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크게 성공한 밝은 측면을 보기 바란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문 대통령, 트럼프가 모두 집권 초반이고 트럼프가 재선을 한다면 7년가량이 남아 그가 강철 같은 의지로 비튼다면 이번엔 김정은 일당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트럼프가 정치적 위기에 몰리거나 재선에 실패하기를 김정은 만큼 바라는 사람도 없을 것이지만.

[김세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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