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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윤대현의 마음읽기] 봄볕 아래서 즐기는 최고의 '마음 비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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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되면 울렁거리는 感性… 자기 省察 기회로 삼아야

讀書는 공감능력 높이고 마음의 위로 효과 커

조선일보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Spring Fever'는 봄이 가져오는 심신(心身) 반응에 대한 영어 단어인데 상반(相反)된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다. 추운 겨울을 나느라 지쳐 찾아온 울적한 피로감을 이야기하는 춘곤증(春困症)을 뜻하기도 하고, 반대로 날이 풀리고 일조량(日照量)이 늘어나면서 에너지가 재충전되어 기분이 살짝 뜨면서 감성적으로 섬세해지는 경향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게 봄은 마음을 오르락내리락 출렁거리게 하며, 바쁜 일상에 건조해진 나를, 조금은 감성 충만한 예술가로 변신시키는 계절이다. '봄' 연관어에 관한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보면 1위가 '벚꽃'이다. 단순 정보를 얻고자 검색했을 수도 있겠지만, 왠지 더 깊은 무의식적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보게 되는데, 벚꽃은 피고 지는 과정이 우리 인생과 닮아있다고들 한다,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던 화려한 벚꽃, 만개(滿開)하고는 쓸쓸하게 고개를 떨군다. 이 슬픔이 섬세해진 봄 감성과 만나 '벚꽃'이라 자판을 두드리게 하지 않았나 싶다.

공부하고 일해야 하는데 이런 봄의 감성 울렁거림이 불편하다는 고민이나 호소가 꽤 있다. 너무 내쳐 버리려 말고 적극적으로 즐겨 보면 어떨까 싶다. '따뜻한 봄볕에 곁들인 책 한 권'을 추천드린다. 독서와 같은 문화 콘텐츠와의 만남은 일에 지친 우리 마음을 재충전해주고 창조적 사고와 공감(共感) 소통 능력을 강화시켜 마음의 위로(慰勞)를 넘어 일에도 도움이 된다. 항우울제 버금가는 효과가 있는 봄볕, 그 따스함을 느끼며 즐기는 한 권의 독서(讀書)는 최고의 '봄 영양제'이다.

책 한 권 읽기, 쉬울 것 같은데 통계를 보면 그렇지 않다, 최근 우리나라 성인 독서율은 59.9%, 즉 10명 중 4명은 일 년간 책 한 권을 읽지 못하고 있다. 1994년 우리나라 성인 독서율이 86.8%였으니 계속 독서와 멀어지고 있는 셈이다. '바빠서', 그리고 '스마트폰, 인터넷 하느라'가 책을 읽지 않는 주된 이유인데 그럼 한가해지고, 스마트폰과 인터넷만 없애면 독서율이 확 오를까.

자녀에게 독서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노력하다가 당황한 부모들의 웃지 못할 고민 사연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모범을 보이기 위해 힘들지만 책 읽는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아 속상하다' '책 사이에 스마트폰을 몰래 넣고 보다 들켜 창피했다' 등. 독서를 쉬운 문화 활동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악기 연주나 미술 창작을 즐거운 취미로 만들려면 노력이 요구되듯 독서도 훈련이 필요한 고급 기술이다.

100년 전, 당시 소르본대학 교수였던 에밀 파게는 '독서의 기술'이란 책에서 "독서에서 적(敵)이란 인생 그 자체다. 질투, 경쟁이 삶을 뒤흔들고 독서를 통한 자기 성찰에서 멀어지게 한다"라고 썼다. 스마트폰, 인터넷이 없던 시절도 독서는 만만치 않았던 것인데, 치열한 삶의 현실이 자기 성찰의 좋은 기술인 독서에 이를 마음의 여유를 사라지게 한다는 것이다.

또 에밀 파게는 "독서는 자기애(自己愛)를 물리치고 승리를 거머쥐는 행위"라고 했다. 책은 하나의 인격을 품고 있다. 그 인격이 나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득하려고 할 때, 내 안에 저항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소중하기에, 누군가 자기의 주장을 강력하게 내 마음에 집어넣으려고 하면, 내가 기분이 나빠진다. 자기애적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을 닫아 버리고 책을 집어던지게 된다. 그러나 책에 저항감이 크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훌륭한 애서가(愛書家)가 될 자질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무조건 다 수용하는 독서는 좋지 않다. 책에 대한 저항이 있어야 건설적인 그리고 선택적인 수용이 가능하다.

봄이 가까이 왔다. 난 책과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던 분이라도, 안에 숨겨진 애서가로서의 잠재력을 믿고, 따스한 봄볕 아래서 책과 치열한 데이트를 즐기는 여유를 가져 보셨으면 한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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