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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기자수첩] '미투 국민 분노'에 만약 法이 무시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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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선엽 사회부 기자


문제가 생기면 여론에 편승해 정부가 대책을 내놓고 국회가 법을 만드는 것은 한국 사회의 오래된 '관행'이다. 이번에도 어김없다.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털어놓은 피해자는 명예훼손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는 일명 '미투피해자보호법'을 발의했다. 진 의원은 "가해자에 대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어 피해자들의 고백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이 있었다"며 발의안을 내놓은 배경을 설명했다. 형법상 명예훼손은 '공연히 사실이나 허위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면 적용된다. 사실이라도 이를 공개적으로 알려 상대의 명예를 떨어뜨리면 처벌한다. 공개된 장소나 출판물을 통해 누군가를 비방할 목적으로 '살인범'이라고 폭로하면, 그게 사실이라도 처벌받는다. 이른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다. 범죄자일지라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현행법으로도 성폭행 피해 폭로자는 가해자의 역고소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 공익성이 인정되면 처벌받지 않는다. '미투피해자보호법'은 공익성을 따지지 않고 모든 폭로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형법이 보호하고자 했던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접어 두겠다는 것이다.

여성문화예술연합의 신희주 감독은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사법 절차가 완료되기 전에 조사 및 징계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이는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배치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에 대한 의혹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가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7일 '미투 운동' 간담회에서 무고죄에 대한 무료 법률 지원을 늘리겠다고 했다. '미투 운동'의 가장 우려되는 부작용은 없는 사실을 꾸며 고발하는 무고(誣告)다. 폭로가 거짓으로 드러나면, 가해자로 지목된 이에 대한 피해는 물론이고, '미투 운동'의 순수성도 의심받을 수 있다. 정부 대책은 오히려 이를 조장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미투 운동'은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못한 성폭력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법적 절차'만을 강조하는 것은 '미투 운동'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라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렇다고 '다수(여론)로부터 소수의 보호'라는 '법의 존재 목적'까지 잊어서는 안 된다.

일부 네티즌도 "미투 운동을 지지하지만, 법까지 무시해선 안 된다"고 우려한다. '미투 운동'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김선엽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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