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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꽉 막힌 홍콩 경제 "中 선전·광저우에 추월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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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이 조만간 올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닥치고 나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네요."

지난 3일 홍콩 중심가인 코즈웨이 베이 지역 한 카페에서 신문을 보던 중년 남성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펼친 지면에는 '중국 선전시의 지난해 GDP(2조2438억위안·약 380조원)가 홍콩의 GDP(2조6626억홍콩달러·약 364조원)를 사상 처음으로 추월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는 선전과 광저우가 홍콩을 추월하는 건 대세가 아니겠느냐"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날 홍콩 언론들은 "홍콩이 더는 변화와 혁신을 늦춰선 안 된다"며 분발을 촉구했다.

최근 홍콩 경제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글로벌 경기가 호황으로 돌아서면서 홍콩 경제도 상승세다. 2%에 머물렀던 경제성장률도 지난해 3%대를 넘어섰다. 지난해 11월에는 홍콩 항셍지수가 3만을 돌파하며 2007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중국발 투자로 부동산 시장도 성장세를 타면서 홍콩 정부는 지난해 1380억홍콩달러(약 18조8700억원)의 재정 흑자를 기록했다. 올해 경제성장률도 3~4%대라는 게 홍콩 정부의 전망이다.

 



조선비즈

홍콩 첵랍콕섬에 있는 홍콩국제공항에서 택시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 홍콩 경제는 글로벌 경기 호조세에 힘입어 괜찮은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미래 성장 동력을 찾는 데 고전하고 있다. 경제 규모에서도 중국 중앙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는 인근 선전 지역에 지난해 추월을 당했다. /블룸버그



하지만 홍콩 내에서는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한때 우리나라와 싱가포르, 대만과 함께 아시아 네 마리 용으로 불리던 화려한 과거와 달리 IT와 인공지능, 공유 경제 등 첨단 산업에서는 선전, 광저우뿐 아니라 인근 경쟁국에도 크게 뒤처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먹을거리는 많지만, 앞으로 먹을거리가 마땅치 않다"는 게 홍콩의 고민이다.

◇'스마트 도시' 공언했지만 기득권·규제 장벽 높아

홍콩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바탕은 높은 개방성과 적은 규제, 낮은 세율, 안정적이고 엄격한 법률 제도를 근간으로 한 시장경제 시스템이다. 여기에 주장(珠江) 삼각주의 관문에 있다는 지정학적 이점을 더해 세계적인 금융·무역·관광 도시로 성장했다. 한 교민은 "홍콩 시민들은 홍콩을 '플랫폼 시티(Platform city)'라고 소개한다"며 "홍콩인과 중국 본토인, 외국인 가릴 것 없이 누구나 홍콩에서 자유롭게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개방적인 도시라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장점이 점점 퇴색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중국을 비롯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공유 경제가 홍콩에서는 지지부진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스페인의 한 IT 기업이 아시아·태평양 국가를 방문한 관광객 7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우버 서비스를 이용했다'는 응답자는 37%, '에어비앤비 등 공유 숙박 서비스를 이용했다'는 응답자는 29%였다. 반면 홍콩을 방문했던 응답자의 86%는 "우버나 에어비앤비 등 공유 경제 서비스를 전혀 이용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디디추싱이 주도하는 우버 서비스와 오포, 모바이크로 대표되는 공유 자전거, 중국판 에어비앤비로 꼽히는 투자·샤오주 등 공유 숙박 서비스가 중국 본토를 휩쓰는 것과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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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내 경제 전문가들은 "홍콩 정부가 관련 업계의 기득권에 막혀 규제 완화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공유 경제의 천국인 중국과 달리 홍콩에서는 여전히 우버 서비스와 에어비앤비가 불법이다. 지난해 5월에는 홍콩 당국의 단속으로 우버 기사 22명이 불법 택시 운행을 했다는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소비자 단체가 "홍콩 내 우버 서비스 개방을 위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내놓자, 홍콩 택시업계가 "법적 대응을 비롯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우버 합법화를 저지할 것"이라며 거세게 저항했다. 홍콩 언론들은 "홍콩 정부가 택시업계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홍콩 정부가 택시 수를 1만8000여 대로 제한한 탓에 택시 번호판 하나가 시중에서 700만홍콩달러(약 9억57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택시를 몰고 있는 홍콩 택시기사들의 강한 반발에 홍콩 정부도 정치적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버스업계도 홍콩 정부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홍콩 정부가 시민에게 실시간으로 버스와 MTR(홍콩 전철)의 위치와 도착 시각, 승객 수 등을 알려주는 모바일 앱 서비스를 추진하며 민간 버스 회사들에 "교통 데이터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민간 버스회사들은 "무료로 그런 정보들을 제공할 의사가 없다"며 거절했다. "2020년까지 홍콩을 세계 최고의 스마트 도시로 만들겠다"고 공언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첫걸음부터 체면을 구겼다.

오포와 모바이크 등 중국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공유 자전거도 홍콩에서는 좁고 복잡한 도로 사정 탓에 제대로 확산되지 않고 있다. 에어비앤비 등 공유 숙박 서비스는 호스트와 이용객 모두 늘어나면서 "관련 규제를 줄여달라"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지만, 홍콩 정부는 "숙박업 허가를 받지 않으면 2년 이상의 징역과 20만홍콩달러(약 27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홍콩 내 에어비앤비 숙소 상당수는 불법 운영을 하고 있다.

◇R&D 지출 늘리고 교육 혁신해야

선전과 광저우는 막대한 정부 지원에 힘입어 IT, 드론, 전기차, 인공지능, 스마트폰 등 첨단 산업분야에서 발전하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반면 홍콩은 여전히 소매업, 금융, 부동산, 법률서비스, 무역업 등 기존 산업에 기대고 있다. 이는 GDP 대비 R&D(연구·개발) 지출 규모에서도 잘 드러난다. 선전의 GDP 대비 R&D 지출 비중은 2016년 기준으로 4.3%, 광저우는 2.3%지만 홍콩은 0.79%로 1%에도 못 미친다. 미래 산업과 먹거리에 대한 연구가 홍콩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홍콩 입법회 의원이자 IT 전문가인 찰스 목은 "홍콩과 달리 선전은 상대적으로 넓은 토지와 배후 지역,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고 있어 두 도시를 동일선상에 비교하는 건 불공평하다"면서도 "하지만 홍콩 정부는 더욱 적극적으로 연구기관과 외국 기업을 유치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이미 선전과 광저우에 뒤져 있다"고 지적했다.

홍콩 경제 전문가들은 "홍콩 정부가 첨단 산업 육성을 위해 더 과감히 나서야 할 때"라고 말한다. R&D 지출을 장려하는 동시에 교육 혁신을 통해 이공계 기피 현상을 해결하고 더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홍콩 과학 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홍콩 중·고등학생의 절반이 과학·기술 관련 과목을 전혀 수강하지 않았고, 고등 수학 과목을 수강한 학생 비율은 2012년 23%에서 2016년에는 14%까지 떨어져 싱가포르와 일본, 한국, 대만보다 현격히 낮다. 홍콩의 한 금융회사 CEO는 "홍콩 청년들이 당장 안정적이고 임금이 높은 공무원이나 금융·법조계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교육 혁신을 통해 IT·기술공학 인재들을 늘리고 창의적인 인재들이 마음껏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홍콩 정부의 과제"라고 말했다.

 



홍콩=배준용 특파원(junsam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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