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01 (금)

다급한 재건축 추진 단지, 안전진단 강화 앞두고 '속도전'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목동 4단지, 21일 안전진단 신청…아시아선수촌, 용역업체 입찰공고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윤종석 김연정 기자 = 정부의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로 준공한 지 30년 안팎의 재건축 추진 단지 주민들의 반발이 심화하고 있다.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를 비롯해 노원·송파·영등포구 등지의 중층 아파트 주민들은 "강남 집값 잡기 정책으로 인해 비강남권 주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심각한 사유재산권 침해"라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일부 단지는 '규제 강화 전 안전진단 신청이라도 해보자'며 속도전에 나선 데 이어, 안전진단 강화에 반대하는 집단 연대 투쟁 등의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 목동 단지 "안전진단 신청이라도 해보자"

이번 안전진단 강화 방침으로 직격탄을 맞은 아파트 단지는 혼란에 빠졌다. 주민들은 "(정부에) 뒤통수를 얻어맞았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목동신시가지 아파트를 비롯해 재건축 논의가 시작된 단지의 주민들은 "강남 사람들은 재건축을 시켜주면서 우리는 내진설계도 안돼 있고 이중삼중 심각한 주차난에, 녹물이 나오는 아파트에 살아야 하냐"며 집단행동에 나설 태세다.

다른 재건축 추진 단지들도 정부의 안전진단 강화 방침 발표 이후 인터넷 동호회나 SNS 등을 활용해 의견을 나누며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지역 국회의원이나 해당 구청에 항의하는 것은 물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재건축 안전진단과 관련한 비판 글을 줄줄이 올리고 있다.

한 청원인은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는 강남·송파 재건축으로 과열된 시장을 잠재우려는 정책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서울 외곽의 노원, 구로 등지에서 30년 동안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며 "왜 강남 집값 때문에 4억원대 아파트서 평생을 살아온 서민들까지 피해를 봐야 하냐"며 안전진단 강화를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단지들은 다음달 규제가 강화되기 전에 안전진단을 신청하자며 의견 수렴에 나서고 있다.

이미 주민 동의요건(주민 10% 이상 찬성)을 갖추고 있던 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4단지 주민들은 지난 21일 양천구에 안전진단을 신청했으며, 5단지와 9단지도 주민 동의를 받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목동 신시가지아파트의 경우 전체 14개 단지 중 5개 단지를 제외한 9개 단지가 30년의 재건축 연한을 넘긴 상태다.

이들 아파트 주민 모임인 '양천발전시민연대' 관계자는 "신시가지 아파트 전 단지가 안전진단을 준비 중이거나 준비를 논의하던 상황에서 동의서를 걷으려다 정부로부터 기습적으로 뒤통수를 맞았다"며 "일단 가능한 단지부터 최대한 빨리 안전진단 접수를 해 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송파구 풍남동 극동아파트, 노원구 태릉우성아파트 등 이번 규제에 해당하는 다른 아파트 단지들도 이번 기회를 놓치면 재건축이 한동안 불가능해지는 만큼 안전진단 접수를 서두르는 분위기로 전해졌다.

강동구와 송파구는 앞서 안전진단을 신청한 강동구 명일아파트와 잠실 아시아선수촌 아파트에 대한 정밀안전진단 용역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지난 20일과 21일 긴급 입찰공고를 냈다.

1천356가구 규모인 아시아선수촌은 지난달 안전진단을 신청하고, 주민들로부터 약 1억9천700만원 상당의 안전진단 비용을 걷어 송파구에 완납했다.

개별 단지들이 하나로 뭉쳐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면서 양천구와 노원구, 마포구 등 강북 아파트 단지들의 '연대'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와 마포구 성산시영, 노원구 월계시영아파트 등은 아직 정식 조합이 설립되기 전이어서 조합원 협의체 형태의 기구를 중심으로 향후 공동 대응을 모색해가기로 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목동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자료사진]



◇ 국토부, 시행 서두르려 행정예고 단축

이러한 주민들의 움직임에 국토교통부는 사업 일정을 서둘러 강화되는 안전진단을 피해 가는 단지가 나오지 않도록 오히려 행정 절차를 앞당기며 맞대응하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 21일 관보에 행정 예고한 '안전진단 기준 고시' 개정안의 예고기간을 다음달 2일로 잡았다.

행정법상 행정 예고기간은 "예고 내용의 성격 등을 고려해 정하되,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20일 이상으로 한다"고 돼 있다. 통상 20일인 예고기간을 '특별한 사정'으로 보고 '열흘'로 단축한 것이다.

행정예고의 내용은 안전진단 개정안 가운데 안전진단 구조안전의 가중치를 50%로 높이는 것과 '조건부 재건축 판정'시 공공기관에 적정성 심사를 받도록 하는, 이번 규제의 핵심 내용이 포함돼 있다.

정부가 행정예고한 안전진단 기준 고시 시행일을 앞당길 경우 이르면 내달 초순 경에도 제도 시행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반대로 행정예고에서 들어온 국민의 의견이 많을 경우 예고기간을 연장할 수 있고, 의견 취합후 고시까지도 시간이 필요하다"며 "현재로선 시행일을 못박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는 집값 안정이 최대 목표인 현 정부에서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재건축을 막기 위해 시행일을 최대한 앞당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안전진단 현지 조사에 공공기관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은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개정 사항으로 조만간 입법예고에 들어간다.

입법예고 기간은 40일이지만 역시 '열흘' 앞당겨 30일로 단축할 수 있다. 오는 26일경 입법예고가 된다면 다음달 27일까지가 예고기간이 되는 것이다.

국토부는 그러나 행정예고와 입법예고가 별개로 진행되지만 도정법 개정이 진행중인 과정에서도 행정예고가 먼저 시행될 경우 그 시행일에 맞춰 구조안전 가중치 강화 등은 시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결국 행정예고 시행일이 중요한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부터 재건축 안전진단 준비를 시작하더라도 강화되는 기준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부는 새로운 기준이 시행된 이후 '안전진단 의뢰'가 들어간 단지부터 새 기준을 적용할 계획인데, 이때 '안전진단 의뢰'의 의미를 전문 안전진단기관을 선정해 '계약 체결'까지 마친 상태로 해석했다.

개정 기준 시행일 전까지 주민 10%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구청에 안전진단 신청을 하고, 이후 지자체의 현지조사(육안검사)를 거쳐, 안전진단 실시 결정이 떨어진 뒤에야 전문 기관에 안전진단 의뢰를 할 수 있다.

게다가 안전진단 업체 선정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안전진단은 민간업체든 공공기관이든 상관없이 맡길 수 있으나 입찰공고를 내고 업체들의 신청서류 접수를 받고 나서 실제 업체를 선정하는 데만 한달 이상 소요된다.

마지막으로 지자체가 업체와 최종 계약까지 맺어야 안전진단 의뢰가 들어간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따라 3월 안으로 제도가 시행된다면 현재 용역업체를 선정 중인 곳을 제외하고 동의서 징수 등 초기 단지들은 개정안을 피해가기가 물리적으로 쉽지 않다.

정부의 이러한 '속도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국민의 재산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데 의견조회를 열흘만 한다는 것이 적절하느냐는 논란이다.

지역 주민들은 공청회 등을 통해 더욱 폭넓은 의견수렴을 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정부가 의견수렴 기간을 단축하며 서두르는 것은 '졸속 행정'이라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양천발전시민연대 관계자는 "재건축 규제를 대폭 강화하면서 어떻게 열흘만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이번 사안은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공청회 등 충분한 사전 논의가 필요한 중대한 문제인데 오히려 법 규정보다 단축해서 행정예고를 했다"고 지적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허윤경 연구위원은 "정권에 따라 원칙도 없이 규제 완화와 강화를 반복하면서 재건축 규제를 집값 잡기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재고돼야 한다"며 "정부의 급격한 정책 변화로 피해를 보는 곳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일대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그래픽] '안전진단 정상화' 개선 내용 (서울=연합뉴스) 장예진 기자 = 20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정상화 방안'에 따르면 아파트 재건축의 첫 관문인 안전진단의 기준이 대폭 강화된다. jin34@yna.co.kr



sms@yna.co.kr, banana@yna.co.kr, yjkim84@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