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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ESC] 달콤쌉쌀한 ‘이혼케이크’가 내 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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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커버스토리

일본엔 이혼식 등 이혼산업 부상

이혼파티·이혼케이크는 미국에서 인기

세계는 이혼비즈니스 시대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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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영화 <쉬즈 더 원 2> 성대한 이혼식 장면. 출처 1905.com


“야 이 자식아! 이혼할 거면 최갈갈이처럼 아버지 직장 다닐 때 해! 나도 그동안 뿌린 거 거둬야 할 거 아냐!” 자녀의 결혼으로 경조사비를 거둬들이려는 부모님의 성화가 낯설지 않은데, 결혼식이 아니고 이혼식이란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네이버 웹툰 ‘이말년씨리즈 2018’의 ‘본격 이혼식 만화’는 경영난에 부딪힌 결혼 컨설팅회사가 ‘희대의 블루오션, 이혼 사업에 올인’하는 과정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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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쇼핑에서 판매한 고가의 이혼 패키지 상품은 곧바로 완판. 이혼인구의 증가와 자기과시 욕구가 맞물려 이혼식은 보편적인 행사가 되었고, 사람들은 이혼식 청첩장을 주고받는다. 결혼식 비용처럼 수천만원에 이르는 이혼식 비용도 하객의 축의금으로 충당한다. 이말년 작가의 상상대로 이혼식이 당연한 세상이 온다면, 결혼보다 이혼 축의금(?)이 훨씬 많이 나가게 될까? 옆 나라 일본에선 이혼식이 영 황당한 소리만은 아니다.

지금 일본은 이혼식이 대유행…결혼 생활 미련 차단이 목적

2009년 4월, 선배의 이혼식을 처음으로 기획한 이후 이혼식 플래너로 이름을 얻은 데라이 히로키의 이혼식 누리집(rikonshiki.com)은 이혼식의 절차와 비용을 소개한다. 송·죽·매로 나뉘어 있는 이혼식 코스는 식장이나 사찰을 빌릴 경우 20만엔(한화 약 200만원), 레스토랑이나 하우스보트는 10만엔(약 100만원), 전통 저택인 경우 5만5천엔(약 55만원)을 지급해야 한다. 하객의 식대는 1인당 3천엔에서 5천엔(3만~5만원)으로 본식 비용과 별도라고. 이혼식은 사회자가 두 사람이 이혼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이혼 경험자인 친구 대표의 인사를 거쳐, 개구리 모양 망치로 결혼반지를 두들겨 부수는 ‘마지막 공동작업’으로 절정에 달한다. 일본어로 개구리(蛙)가 돌아가다(?る)는 뜻인 ‘가에루’와 발음이 같다는 것에서 착안해, 망치로 반지를 부수고 각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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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는 결혼식만큼이나 많은 의미가 부여된다. 구랑(이혼식에서는 신랑, 신부 대신 구랑과 구부라고 부른다)이 던진 부케를 잡은 사람은 원만한 이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대표적. 이혼식의 신청자는 80%가 남자로 지난 결혼 생활에 대한 미련을 차단함이 목적이며, 눈물을 흘리는 쪽도 여자보다 남자가 많단다. 2009년부터 500건 이상의 이혼식을 열었던 데라이 히로키는 최근 이혼을 전제로 한 공개구혼에 나섰다. 2018년 2월12일 <스포니치아넥스>의 보도에 따르면 ‘결혼 경험이 없는 만큼, 결혼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원만한 이혼도 해보고 싶다’는 것이 이유다. 괴짜가 고안한 장난인가 싶지만, 법적인 절차와는 별개로 이혼식을 통해 부부의 연을 끊는 당사자들은 사뭇 진지하다. 격식을 갖춘 일종의 의식이 갖는 힘일까? 일본에는 데라이 히로키처럼 행사를 주관하는 이혼식 플래너를 양성하는 시험과 사설 자격증도 존재한다.

이혼케이크 등 미국은 이혼비즈니스가 인기

결혼과 이혼 절차가 간단하기로 유명한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파티 플래너들은 브이아이피(VIP) 고객들의 이혼파티에 주목했다. 웨딩드레스를 불태우거나 기관총으로 구멍을 내는 파격적인 이벤트를 기획했던 글린다 로즈는 2014년 ‘키스트 더 롱 프로그’(Kissed The Wrong Frog)를 이혼파티용품 브랜드의 상표로 등록했다. 지난 결혼은 왕자로 변하지 않는 개구리에게 했던 키스처럼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뜻이다. 일본에서 결혼반지를 부수느라 수고했던 개구리가 미국의 이혼파티에 또 불려 나온 셈. 미디어 노출에 거리낌이 없는 연예인들이 라스베이거스에서 벌이는 요란한 이혼파티와 이들의 이혼 기념 케이크가 대중의 눈길을 끌기도 한다. 전통적인 웨딩 케이크 꼭대기에 장식하는 신랑, 신부 인형을 해코지하고 붉은 피를 형상화한 섬뜩한 케이크가 있는가 하면, 이혼으로 얻은 자유를 만끽하고픈 마음으로 끊어진 족쇄를 케이크 장식으로 올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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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를 입고 이혼파티를 한 니콜 니스너와 친구들. <데일리메일>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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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혼파티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버지니아 아이언사이드는 2010년 1월28일 <데일리메일>을 통해 ‘이혼파티를 하거나 이혼 선물을 주는 것은 무자비하고 무신경하다’고 지적했다. 유산이나 실직을 축하하지는 않으며, 집이 불탔다고 파티를 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이혼이 불행한 사건이기만 할까? 결혼이 그렇듯, 이혼 또한 선택과 결정의 결과물일 수 있다. 물론 이혼을 감당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고, 또 함부로 넘겨짚을 일은 아니다. 함께하기 곤란한 배우자와 후련하게 이혼했다고 해도, 많은 상념으로 뒤척이는 밤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남과 나눌 수 없는 고통이라 여겨도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적어도 고립은 피할 수 있을 테다. 최근 13년의 결혼생활을 끝낸 캐나다 여성 니콜 니스너의 이혼파티가 화제였다. 니콜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친구들은 모두 자신의 웨딩드레스를 들고 니콜의 집에 모였고, 파티의 주인공인 니콜도 창고를 뒤져 해묵은 웨딩드레스를 꺼내 입었다. 미국 <엔비시>(NBC) 채널의 전설적인 시트콤 <프렌즈>의 한 장면을 재연한 니콜과 친구들의 사진은 곧 수많은 외신을 통해 전세계에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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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든든한 친구가 함께한다면 이혼식이든 이혼파티든 규모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2003년부터 이혼파티 트렌드를 이끈 이혼파티 플래너이자 심리치료사인 크리스틴 갤러거는 2016년 2월4일 <허프포스트> 블로그에 저서인 <이혼파티 핸드북>의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60명이 참석한 호화로운 보트 파티를 기획한 적이 있는 그도 이혼파티를 하고 싶지만 많은 돈을 쓰고 싶지 않을 땐 할인식품점에서 와인을 사고 냉동피자를 사는 식으로 친구들과 싸게 먹고 마시는 파티를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파티가 별건가. 홈 파티도 파티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이혼

부부가 유지되어온 결합 관계를 해소하는 행위. 크게 협의 이혼과 재판 이혼이 있다. 재판 이혼은 조정 이혼과 소송 이혼으로 나뉜다. 최근 국내 한 재벌 총수 부부의 이혼 조정 실패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에선 매해 10만건 이상 이혼이 이뤄지는데, 설과 추석 명절 뒤 신청 건수가 급증한다. 현재까지 최고의 이혼 위자료는 1999년 미국의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전 아내에게 준 17억달러(약 1조8200억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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