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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가보지않은 길 `新창극` 펼치는 두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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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신창극 `소녀가`의 배우 이소연(왼쪽)과 연출 이자람. [사진 제공 =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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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않은 길로 갈 거야, 재미있어 보이는 곳으로 갈 거야."

빨간 망토를 입은 작은 소녀가 낯선 숲속 할머니 댁으로 향하다 늑대를 만나 잡아먹힐 위험에 빠진다. 신창극 '소녀가'는 동화 '빨간 망토'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 동화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다. 수많은 판본 중에서도 프랑스 소설가 장자크 프디다가 새롭게 쓴 '빨간망토 혹은 양철캔을 쓴 소녀'를 택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빨간 망토를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늑대도 소녀의 손 안에서 놀아나는 존재일 뿐이다. 사냥꾼의 도움도 필요 없다. 호기심 충만한 빨간 망토는 자신만의 재치를 발휘해 더 넓은 세상으로 '모험'을 계속해 간다.

이자람(39)과 이소연(34), 두 여성 소리꾼이 이 모험에 동행한다. 국립창극단은 올해부터 동시대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신창극시리즈'를 시작한다. 말 그대로 전에 없던 새로운 '오늘날'의 창극을 찾아가는 실험이다. '소녀가'는 2월 28일~3월 4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그 첫 테이프를 끊는다.

연출·극본·작창·작곡·음악감독으로 1인 5역을 도맡은 이자람은 "꼭 아이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소녀가'는 '소녀가 숲에 가서 꽃을 들고 놀다가 늑대를 만나 늑대랑 같이 놀고 숲을 신나게 달려 돌아왔다'는 이야기예요. 늑대가 남자냐고요? 그런 메타포는 중요하지 않아요.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궁금하면 알아가고 원하면 해보는, 그늘 없는 삶의 방식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왜 작품 속 소녀는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까. 그 용기는 어디서 나올까'라는 질문에 이자람은 "왜 낯선 것, 새로운 것을 두려워해야 하죠?"라고 반문해왔다. "그것도 결국 교육의 산물인 것 같아요. 유치원 때부터 '얌전한 아이가 되어야 해' '부모님 말씀 잘 들어야 해' '가만히 있어'란 말을 듣고 자라잖아요."

마을 외곽, 은밀하고 음습한 '숲'은 문학에서 종종 '성애(性愛)'를 상징하곤 한다. 이자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이 숲이란 공간은 사람들이 다 갔다 왔으면서도 어떤 곳인지 설명해주지 않는 곳이에요. 대한민국은 모두가 성(性)을 즐기면서 모두가 안 즐기는 '척'하죠. 엄마와 딸이 나눌 수 없는 것. 남자들끼리는 '알지?'로 통용되는 것. 꼭 많은 아이들이 봤으면 하는 이유기도 해요. 만약 제가 12살('소녀가'는 12세 이상 관람가)에 이 '소녀가'를 만났다면 저는 훨씬 더 건강한 연애를 할 수 있었을 거예요."

호기심 많은 천진난만한 소녀 역으로 무대에 서는 이소연은 '소녀'라는 두 글자로부터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여자'가 아닌 그저 아이가 자신의 순수한 욕망과 마주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요. 하지만 어느새 얌전하고 수줍고 귀여운 소녀를 연기하고 있더라고요. 심지어 어린 시절 저는 늘 커트머리를 고수하는 씩씩한 아이였는데도 말이죠. 저도 모르게 '소녀'라는 사회의 판타지에 빠져버리는 거예요." 이자람 연출도 동의했다. 그래서 작품의 배경도 한국으로 옮기지 않고 17세기 프랑스를 유지하기로 했다. "한국 사회로 가져오면 더 많은 편견에 물들더라고요."

'신창극'의 첫 번째 작품, '소녀가'는 '1인 창극'으로 이전에 없던 모노드라마 형식의 창극이다. 무대 위에는 이소연 단 한 명뿐이다. 그녀는 소녀와 늑대, 나무 등 모든 배역을 소화한다. "판소리에서도 1인 다역을 맡지만 이야기꾼으로서 들려주는 형식이죠. 하지만 '소녀가'에서는 배우잖아요. 각각의 모든 배역의 이야기가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부담이 되면서 기대도 되죠." 이 작품은 이자람이 오로지 이소연만을 위해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1인 창극은 결국 소리꾼이 모든 걸 짊어지고 가는 무대예요. 소녀가 바로 소연이죠. 새로운 소녀가 온다면 작품은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죠."(이자람)

작품은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 등 최근 문화예술계에서 부는 여성 인권의 바람과 맥락을 같이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 작품을 '페미니즘'의 틀에 가두지 말기를 부탁했다. "작품을 할 때 무언가를 겨냥하거나 구체적인 효과를 기대해 본 적이 없어요. 작품이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 버리면 선입견 때문에 오히려 관객들이 가져갈 수 있는 감동이 반감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가 이건 '미투'라고 느껴도 좋고 또 누군가에게는 그저 신나는 소녀의 모험 이야기여도 족해요."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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