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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일본 사회 최종결정권자는 사람이 아닌 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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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공기의 연구
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 박용민 옮김|헤이북스|296쪽|1만6800원

“사람이 진짜 공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일본인들은 ‘공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일본론의 대가인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1977년 집필한 ‘공기의 연구’는 일본 지식인 스스로가 들여다본 일본인론이자 일본 사회문화론으로서, 4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일본론의 교과서로 읽히는 명저다.

저자는 일본인들이 무형의 분위기에 집단적으로 지배당하는 일본 특유의 이유를 ‘공기’와 ‘물’이라는 수사적 표현으로 설명했다. 말하자면, 일본 사회와 조직은 논리적 이론이나 합리적 근거가 아닌 ‘공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지금도 일본 사회에서 일상용어로 자주 등장하는 ‘KY(구키 요메나이, 즉 공기를 못 읽는다)=눈치가 없다’의 ‘공기’를 최초로 명명한 사람이 바로 저자다.

일본인은 종종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비난은 있지만, 당시 회의 공기로는…”, “당시 회의장의 공기로 말하자면…”, “그 무렵 사회 전반의 공기를 모르면서 비판하면…”, “그 자리의 공기도 모르면서 잘난 체하지 마라”, “그 자리의 공기는 내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달랐다”라고 말한다. 온갖 경우에 뭔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공기’다.

저자는 공기의 구속력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뤄진 국가적, 군사적 차원의 이슈들로 설명했다. 전함 야마토의 출격 결정에 관여한 전문가들이 모두 무모하고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반대하지 못했던 모습이 ‘공기’의 전형적인 사례. 이는 천황을 앞세운 공기가 정치·경제·사회·군사·문화까지 파고들었기 때문.

‘공기론’은 일본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관찰되는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우리는 분위기와 흐름 속에 어떤 의사가 결정되고 집행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을 공기론으로 설명하는 이유는 공기에 대한 일본인만이 가진 예민하고도 신속한 반응, 무엇보다 강력하고 절대적인 공기의 지배·구속력 때문이다. 사람이 진짜 공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일본인들은 ‘공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어판에는 옮긴이의 주석이 192개가 달려 있다. 일본인이 아니면 잘 알 수 없는 인물·사건 등의 자료를 조사하고 자문을 받은 정성이 돋보인다.

[디지털편집국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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