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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World & Now] 트럼프의 `무역 몽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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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미국이 철강 수입제한조치를 예고하면서 꺼내든 카드가 무역확장법 232조다. 1962년 제정된 이 법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경우 무차별 무역제재를 허용하고 있다. 안보에 위협이 되고 말고를 판단하는 것은 상당히 주관적이다. 다시 말해서 무역확장법 232조의 본질은 교역 상대국에 잘못이 있든 없든 '내 맘대로' 무역제재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합리적이지 않고 타당성도 떨어지는 법을 적용하는 게 부담스러웠던지 미국은 역사적으로 단 두 차례만 이 법을 사용했다. 1979년 이란과 1981년 리비아 원유에 대한 수입 금지였다.

먼지 쌓인 이 법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37년 만에 끄집어내 한국산 철강에 들이댔다. 한국 말고도 중국 인도 브라질 등 11개국이 더 있지만 유독 한국이 눈에 띈다. 한국은 철강수입 제재 대상 중 유일한 미국의 우방이다. 한국보다 철강 수출이 더 많은 캐나다가 빠졌고, 일본도 제외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때리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을 타깃으로 세이프가드를 발동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한국산 텔레비전에 대해서도 경고를 보냈다. 이 정도면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셈이다.

미국은 '눈 밖에 난 나라'에 대해 강경한 무역조치를 해왔다. 1985년 플라자합의는 미국이 주요 5개국(G5) 정상들을 부추겨 달러화 가치를 강제로 낮춘 조치다. 이로 인해 미국에 대규모 흑자를 내던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됐다. 이는 당시 나카소네 총리가 이란-이라크 전쟁에 대비한 레이건 대통령의 페르시아만 항로 보호 요청을 거절하고, 시장개방 요구조차 묵살하면서 빚어진 미·일 갈등과 무관하지 않다. 2009년 취임한 하토야마 총리가 그해 11월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후텐마 주일미군기지 이전을 놓고 마찰을 빚었다. 또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중심 외교를 한다고 미국과 거리 두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미국은 이듬해 1월 대규모 도요타 리콜 사태로 일본에 타격을 가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아베 총리는 미국에 지나칠 정도로 저자세다.

한국이 처한 상황이 지난날의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면서 사드 배치 연기, 개성공단 재개 검토, 대북지원 논란 등으로 한미 갈등이 깊어졌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레이건, 오바마 대통령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혹자는 촛불 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대한민국 정부가 미국 눈치를 볼 필요가 있느냐고 한다. 백번 맞는 말이지만 촛불이 미국에는 통하지 않는다. 아베 총리의 저자세 외교 덕분에 일본 경제는 트럼프의 무역보복 '소나기'를 피하고 있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letswi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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