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1 (금)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 검사 나선 금감원..."폐기됐다는데 검사 실효성 의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금융당국이 19일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제 시행 이전에 개설됐던 25년 전 이건희 삼성 회장의 27개 차명계좌의 잔액을 확인하기 위해 삼성증권 등 4개 증권사 검사에 착수했지만 검사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선 그동안 27개 차명계좌의 원장이 폐기됐다고 밝혀온 금융당국이 정치권 등의 압박을 의식해 시늉내기 조사에 나선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19일 오전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이건희 차명계좌 확인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삼성증권(016360)·미래에셋대우(006800)·한국투자증권·신한금융투자 등 4개 증권사에 대해 3월 2일까지 검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TF는 원승연 자본시장・회계담당 부원장을 단장으로 금융투자검사국장, 자금세탁방지실장, IT‧핀테크전략국장 등으로 구성됐다. 금감원 직원 10명이 검사1반, 2반으로 나눠 현장 검사를 실시한다.

조선비즈

조선DB



◇ 작년말 검사에서 차명계좌 폐기 확인했다던 금융당국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말 법제처에 이 회장의 27개 차명계좌가 과징금 부과 대상인지에 대해 금융실명제법상 유권해석을 내달라고 요청했고, 법제처는 지난 12일 27개 차명계좌가 과징금 부과 대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금융실명제법 시행 이전에 4개 증권사에서 개설된 이 회장의 27개 가명계좌가 과징금 부과대상이 됐다. 2008년 삼성 특검에서 이 회장의 차명계좌는 1197개로 드러났고 이 중 27개가 금융실명제 시행 이전에 만들어졌다.

현행법상 과징금 부과액은 금융실명제가 시행된 1993년 8월 12일 당시 차명계좌 잔액의 50%다. 즉, 과징금을 매기기 위해서는 당시의 차명계좌에 얼마가 들어있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해 11월부터 2주간 실시한 점검 결과, 이 회장의 27개 차명계좌 자료가 전부 폐기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금융위원회는 이 회장의 차명계좌가 타인명의라도 실존하는 사람의 실명으로 전환됐기 때문에 과징금 부과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금융실명제법에는 금융실명제 시행 이후 차명계좌에 대해 과징금을 징수해야 하는지 명확한 규정이 없어 논란이 컸던 상황이었다.

반면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금융실명제 시행 후 타인의 명의로 전환된 이 회장의 27개 차명계좌에 대해 과징금과 소득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법제처의 유권해석은 결국 정치권 일각과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금융당국은 법제처 유권해석이 나온 그 다음날인 지난 13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가진 당정협의에서 질타를 받았고 이 회장의 27개 차명계좌에 대해 적극적인 검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의 압박에 등떠밀려 검사에 나섰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조선비즈

금감원 제공



◇ 실효성 의문

현재까지 드러난 이 회장 차명계좌 27개의 잔액은 2007년 12월말 특검 때 나왔던 965억원이지만 금융실명제 시행 당시 잔액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금감원은 이번 검사에서 2007년 특검 때보다 14년 전의 계좌에 들어있던 잔액을 확인해야 한다. 특검의 과징금 부과 제척기한(10년)은 수사결과 발표일인 2008년 4월 17일로부터 2개월쯤 남았다.

금감원은 부랴부랴 검사에 착수했으나 일각에서는 검사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무엇보다 거래 기록인 원장(元帳)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상법상 금융사는 원장을 10년만 보관할 의무가 있다. 앞서 4개 증권사들은 지난해 11월 2주 간 진행된 금감원 검사에서 관련 원장을 이미 모두 폐기했다고 보고했다. 당시 보고를 받은 금감원도 이 회장의 차명계좌 중 27개가 금융실명제 시행 이전에 개설됐으나, 관련자료가 폐기됐음을 확인했다.

금융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사실상 정치권과 시민단체로부터 등을 떠밀려 금감원이 검사에 착수했지만, 거래 원장이 없는 상황에서 현장 검사를 하더라도 유의미한 증거를 찾을 가능성은 극히 적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금융투자검사국 관계자는 “원장 의무보유 기한은 이미 지났으나, 해당 증권사들의 전산이나 서류 등에 관련 기록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어 집중적으로 수색할 방침”이라며 “폐기된 자료를 복원하거나 당시 거래 기록을 파악할 방법은 없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금감원은 이 회장 차명계좌가 아닌 일반 차명계좌 150만개에 대해서는 조사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이 회장 계좌처럼 검찰 수사나 금감원 검사 과정에서 차명계좌인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한 굳이 계좌의 실소유주를 찾아내 과징금 부과를 검토할 일은 없다는 뜻이다.

김문관 기자(moooonkwan@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