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부진에 빠진 현대·기아차가 올해 신차 효과로 영업이익을 회복할지 완성차 업계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현대차 울산공장(위)과 최근 공개한 신형 싼타페. <현대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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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등 여파로 글로벌 시장 부진에 시달린 현대·기아차가 우울한 성적표를 내놨다. 현대차와 기아차 모두 영업이익이 급락하면서 국제회계기준(IFRS)을 도입한 2010년 이후 최악의 연간 실적을 기록했다. 예상된 악재이긴 했지만 실적 하락 폭이 크다 보니 적잖이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이다.
현대차는 최근 경영 실적 발표회를 열고 지난해 영업이익이 4조5747억원으로 전년 대비 11.9% 하락했다고 밝혔다. 현대차 영업이익이 5조원을 밑돈 것은 2010년 이후 처음이다. 그나마 매출은 전년 대비 2.9% 늘어난 96조3671억원을 기록했다. 현대차 영업이익은 2012년 8조4369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11년 10.3%로 두 자릿수였던 영업이익률도 지난해 4.7%로 추락했다.
기아차도 실적이 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2016년 대비 73.1% 급감한 6622억원에 그쳤다. 기아차 연간 영업이익이 1조원 아래로 떨어진 것 역시 2010년 이후 처음이다. 통상임금 판결에 따른 1조원가량 비용을 반영하면서 실적 부진 직격탄을 맞았다. 매출은 1년 새 1.6% 증가한 53조5357억원으로 ‘제자리걸음’을 했지만 영업이익이 급락해 영업이익률은 1.2%로 떨어졌다. 현대차와 기아차를 합친 영업이익률도 3.5%에 그쳐 2007년(3.8%) 이후 10년 만에 영업이익률이 3%대로 하락했다.
현대·기아차 영업이익률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비교해도 하위권이다. BMW 영업이익률은 9.1%에 달했고, GM(7.5%), 토요타(6.6%), 폭스바겐(6%)도 현대차(4.7%)와 기아차(1.2%)를 한참 앞질렀다(현대·기아차는 지난해 연간, 나머지는 1~3분기 기준). 수익성이 떨어졌을 뿐 아니라 세계 시장 판매량도 뒷걸음질 쳤다. 지난해 현대·기아차 판매량은 721만4244대로 2016년(783만3635대)보다 62만대가량 줄었다.
현대·기아차 실적이 추락한 주요 이유는 주력 시장인 중국과 미국 ‘G2’ 판매량이 부진한 탓이 크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지난해 미국 판매량이 각각 11.5%, 8.9% 줄면서 재고 물량이 4개월치나 쌓였다. 현지 세단 모델 수요가 줄어든 데다 주력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모델이 노후화되면서 글로벌 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린 탓이다. 중국 시장 상황은 더 심각했다. 현대·기아차의 지난해 중국 판매량은 114만5012대로 전년 대비 36%나 줄었다. 사드 보복 여파에다 최근에는 품질 논란까지 불거졌다. 현대차 중국 합작법인 베이징현대는 중국 현지에서 생산한 ‘올 뉴 투싼’ 9만7574대를 대상으로 2월 1일부터 리콜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브레이크 페달 관련 제어장치와 자동변속기에 결함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품질 문제로 실적 회복이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해외 시장 부진에다 잦은 파업, 원화 강세 여파도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했다.
절치부심한 현대·기아차는 올해 신차를 대거 선보여 글로벌 시장 부진을 돌파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2012년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4세대 신형 싼타페에 거는 기대가 크다. 싼타페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연초 신년사에서 가장 먼저 언급할 정도로 현대차가 공을 들인 모델. 2월 7일 사전계약에 돌입한 뒤 2월 말부터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한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SUV 강세가 지속되는 만큼 내수뿐 아니라 수출 시장도 적극 공략할 심산이다. 이와 함께 지난 1월 초 미국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공개한 벨로스터도 상반기 판매에 들어간다. 현대차 인기 SUV 모델인 투싼, 준중형 세단 대표주자 아반떼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모델도 올해 새로 선보인다.
판매 부진에 시달리는 미국 시장에서는 SUV 차량을 전면에 내세우기로 했다. 2020년까지 8개 SUV를 출시해 라인업을 보강한다. 소형 SUV 코나를 시작으로 차세대 수소전기차 넥쏘, 전기차 코나EV와 싼타페, 투싼 신모델을 연내 미국 시장에 투입한다. 싼타페가 현대차 전체 미국 판매량의 19%를 차지하는 만큼 신형 싼타페가 얼마나 좋은 반응을 얻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중국 시장에서는 현지 전략형 차량을 대거 선보일 예정이다. 소형 SUV 엔시노(한국명 코나), 쏘나타 플러그인하이브리드 등 다양한 신차를 내놓고 지난해 출시한 중국 전략형 신차 ix35 판매에 드라이브를 걸기로 했다.
기아차도 신차 모델이 꽤 많다. 이미 중형 세단 K5 페이스리프트를 내놓은 것을 필두로 2월에는 준중형 세단 K3(수출명 포르테)를 선보인다. 3월에도 대형 세단 K9을 내놔 신차 공세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대대적인 신차 공세에도 불구하고 올해 현대·기아차를 둘러싼 경영 환경은 그리 녹록지 않다. 지난해부터 원화 강세 흐름이 이어지는 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도 변수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 미국 공장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 현지 수요가 많은 SUV 코나, 투싼은 주로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한다. 미국의 통상압박이 거세지고 한미 FTA 재협상에서 자동차 규제가 더해지기라도 하면 현대·기아차 실적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은 9372만대로 전년 대비 1.2% 증가하는 데 그칠 전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지역별로는 현대차그룹 핵심 시장인 미국, 중국 판매량이 각각 1.7%, 1.3%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판매 부진 원인으로 사드 보복이 꼽히지만 중국 현지 업체 차량 품질이 좋아진 데다 가격 경쟁력도 높아 현대·기아차 경쟁력이 취약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나마 실적 버팀목 역할을 했던 한국 시장 성장률도 1.1% 하락할 전망이다. 조수홍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원화 강세, 글로벌 수요 둔화 등의 악재로 현대·기아차는 올해도 영업 환경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10년 만에 영업이익률 3%대 기록
SUV 신차 승부수 통할지 의문
미래차 경쟁력 제고 ‘발등의 불’
매년 반복되는 노조 파업 리스크가 언제 또다시 불거질지도 미지수다. 회사가 노조에 끌려다니는 사이 현대·기아차의 인건비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15.2%로 국내 5개 완성차 제조사 중 가장 높다. 기아차 인건비 비중 역시 10.3%로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토요타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이 8%에 못 미치는 것과 대비된다.
인건비 비중이 높다 보니 당연히 생산성도 떨어진다. 세계 자동차 공장 생산성 지표를 조사하는 하버리포트에 따르면 현대차 국내 공장이 자동차 1대 생산에 소요한 시간은 26.8시간으로 GM(23.4시간), 포드(21.3시간)보다 훨씬 길다. 그만큼 글로벌 완성차 업체보다 인건비 부담은 크고 생산 효율성은 낮다는 의미다.
최근 퇴임한 윤갑한 현대차 사장(울산공장장)도 “현대차가 100년 기업이 되려면 협력적인 노사관계 구축이 절실한데 노조원들이 ‘대마불사(대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라는 잘못된 미신에 빠져 있다”고 꼬집었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 화두인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경쟁력이 뒤떨어진다는 우려도 크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현대차가 우버, 바이두 등 글로벌 IT 기업들과의 협업으로 차세대 자동차를 개발하는 노력을 하지만 여전히 사업구조가 내연기관차에 치우쳐 있다”며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나마 현대차그룹은 올 들어 향후 5년간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등 미래차 개발과 관련된 신사업 분야에 23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혔지만 뒤늦은 조치라는 평가가 많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기아차가 위기를 극복하려면 노사 갈등을 줄이고 자율주행차, 친환경차 등 미래차 연구개발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숱한 악재 속에서 현대차그룹은 올해 글로벌 판매 목표를 755만5400대로 정했다. 현대차는 지난해보다 3.8% 증가한 467만5000대, 기아차는 5% 늘어난 287만5000대를 판매하겠다는 포부다. 올해 대대적인 신차 공세를 예고한 현대·기아차가 지난해 실적 부진을 딛고 보란 듯이 분위기 반전에 성공할지 완성차 업계 이목이 쏠린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45호·설합본호 (2018.02.07~2018.02.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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