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동남아의 커피 생산국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커피 농장에 있는 카페에서 직원이 커피를 만드는 모습. 인도네시아는 고급 커피 생산지로 유명하다. 김이재 교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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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
‘커피공화국’으로 불리는 한국에서는 고급 커피도 사랑받고 있다. 커피 생산지로는 흔히 아프리카, 중남미를 떠올리지만 동남아시아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세계 커피 생산량은 1위 브라질, 2위 베트남, 3위 콜롬비아, 4위가 인도네시아다.
19세기 프랑스 식민 시대부터 커피 재배가 시작된 베트남에서는 카페 문화가 뿌리 깊다. 전통 추출 방식으로 천천히 똑똑 떨어지는 커피에 진한 연유를 탄 ‘핀 커피’는 끈기 있게 기다릴 줄 아는 베트남인과 닮았다. 프랑스와 미국을 물리친 베트남은 커피 생산지도 전투적으로 확장했다. 커피 산업은 1990년대 개방 정책 후 급성장해, 세계 로부스타(robusta·원두커피의 한 품종) 시장을 장악했다. 중부 고원지대가 고온에도 잘 자라는 저가의 로부스타 커피 재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중부 닥락성의 거점도시, 부온마투옷은 커피 기업과 상점이 밀집해 ‘베트남의 커피 수도’로 불린다.
‘쭝응우옌(中原·Trung Nguyen)’은 닥락성 출신의 가난한 의대생이 창업해 성공한 토종 커피기업이다. ‘베트남의 스타벅스’를 꿈꾸는 국민기업 쭝응우옌은 자국산 고품질 커피에, 후에 왕실의 전통과 유럽풍 카페 문화를 가미해 ‘베트남 커피는 저가’라는 편견에 도전한다. 서늘한 북부 산지에서 소량 생산하는 고급 아라비카 원두를 사용한다. 하지만 최근 베트남의 커피 생산은 기후 온난화와 물·토지 부족으로 한계에 봉착했다.
적도의 목걸이’로 불리는 인도네시아는 자바, 수마트라, 발리, 술라웨시, 보르네오 등 1만7500여 개 섬으로 이루어진 커피 제국이다. 사향고양이가 만든 최고급 커피 ‘코피루왁’과 콜드브루의 원조 ‘더치커피’도 인도네시아에서 비롯됐다. 서늘하고 일교차가 큰 고산 기후, 비옥한 화산재 토양, 청정하고 물이 풍부한 환경에서 다양한 풍미의 아라비카 고급 커피가 재배된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이 가장 좋아하는 커피가 수마트라산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18세기 자바에서 대량 재배가 시작돼 인도네시아산 커피가 인기를 끌면서 암스테르담 커피거래소는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자바의 주도 반둥은 커피 경제의 중심지로 전성기를 누렸지만 노동자에게 커피는 쓰디쓴 슬픔이었다. 자바에 파견된 인도네시아 식민관료가 1860년 가명으로 출판한 소설 ‘막스 하벨라르’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착취와 플랜테이션 노동자의 고통을 생생하게 묘사해 서구 공정무역 운동의 기원이 됐다.
19세기 말 커피 녹병이 번지며 자바의 커피 산업은 쇠락했지만 술라웨시의 토라자, 수마트라 만델링과 아체 가요, 발리 킨타마니, 플로레스 등 싱글 오리진(단일 원산지의 단일 품종 원두) 아라비카 커피를 생산하는 인도네시아의 위상은 여전히 확고하다.
라오스의 블라벤 고원은 최근 고급 커피 생산지로 급부상했다. 훌륭한 자연과 쾌적한 고산 기후 덕분이다. 커피밭 인근에는 전통문화 체험과 연계한 리조트도 늘고 있다. 마약 산지로 악명 높았던 태국∼미얀마 국경의 산악지역도 현지인의 자립을 돕는 커피밭이 조성돼 착한 커피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유럽 스페셜티 커피협회 회원들은 원두 직거래와 기술 전수를 위해 동남아시아 고급 커피 산지를 해마다 방문하고 교육용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커피밭은 생산지의 환경과 주민 복지를 생각하는 소비자와 공정무역 커피숍 덕분에 희망의 공간이 되어 가고 있다.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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