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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70년대 한국 미술판 휘저었던 이강소·김영진 나란히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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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3전시실에 나온 이강소 작가의 1990년대 회화 작업들. 자연의 기운생동을 담아 붓질한 1999년작 추상회화 ‘강에서-99215’(오른쪽)와 사슴의 실루엣을 통해 존재의 생명력을 표출한 1990년대 초반의 연작들이 보인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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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소(81)와 김영진(78). 이제 70~80대 노령의 원로 예술가가 된 두 작가의 이름을 올가을 한국 미술계는 각별하게 주목한다.



그들이 1970년대 이후 펼쳤던 작업 활동은 바로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와도 잇닿는다. 그 시작점에는 숨막히는 유신시대의 한 중간을 지나던 1974년 10월, 대구 계명대 미술관에서 30~40대 청년 미술가들이 의기투합해 그림과 조각을 벗어난 입체미술과 행위예술을 발산했던 사건이 있다. 한국 최초의 전국 단위 현대미술 난장으로 꼽히는 제1회 대구현대미술제의 태동이었다. 1979년 일본 작가들까지 참여한 국제 행사로 다섯번째 미술제를 마무리할 때까지 비디오아트와 설치미술, 개념미술 작품들을 쏟아내며 당대 소장 작가들이 한국 현대미술의 주력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틀거지를 만든 주역이 바로 이 두 사람과 고 박현기, 고 황현옥, 최병소 같은 대구 출신의 현대미술 작가들이었다.



1960년대 말 청년작가 연립전으로 기지개를 폈고, 에이지 그룹, 에스티 그룹 등으로 성장하려던 한국의 청년 실험미술은 박서보의 단색조 추상회화로 대표되는 전후 앵포르멜 성향 선배세대 작가들의 압박 속에 70년대 중반 진화하지 못하고 추상화단에 흡수되면서 주저앉아 버린다. 이강소와 김영진은 이런 반동적 상황에서 당시 전위의 불씨를 이어가면서 한국 현대미술의 혁신적 명맥을 이어나갔던 작가들이었다.



1회 대구현대미술제 개최 50돌을 맞아 당대 전위미술의 끌차였던 두 작가의 회고 기획전이 마련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내년 4월13일까지 열리는 전시 ‘이강소: 風來水面時 풍래수면시’와 서울 삼청동 갤러리신라 서울점에서 내년 1월4일까지 열리는 ‘김영진의 陽(양)’이다. 미술사적 맥락에서 뒤늦었지만 소중한 재조명의 계기가 되는 전시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이강소 작가의 전시는 관객이나 작가나 모두 세계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시각을 표출하는 동등한 존재들이라는 특유의 작품관을 바탕으로 회화, 조각, 설치, 판화, 영상,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지속해온 개념적 실험을 보여준다. ‘바람이 물을 스칠 때’를 뜻하는 ‘풍래수면시’란 전시 제목은 새로운 세계와 마주치고 깨달음을 얻은 의식의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송나라 성리학자 소옹(邵雍, 1011~1077)의 시 ‘청야음’(淸夜吟)에서 따왔다고 한다.



미술관 쪽은 7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탐구해온 두 가지 질문에 중심을 두고 전시를 풀어갔다고 밝히고 있다. 창작자이자 세상을 만나는 주체로서 작가 자신의 인식에 대한 회의가 첫 질문이라면, 작가와 관객이 바라보는 대상에 대한 의문은 두번째 질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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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소 작가가 1977~78년 제작한 비디오아트 작품인 ‘페인팅 78-1’.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회고전 들머리에 처음 선보였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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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맥락에서 70년대 대구에서 작업한 비디오 작업 ‘페인팅 78-1’(1978)이 주목된다. 카메라 앞에 유리판을 세워놓고 붓으로 계속 덧칠하는 장면을 찍은 것으로, 붓질이 계속되면서 작가의 모습은 사라진다. 누드 상태의 작가가 몸에 물감을 바른 뒤 천으로 물감을 닦아내고 그 천이 최종 결과물이 되는 퍼포먼스 ‘페인팅(이벤트 77-2)’(1977) 또한 이런 맥락을 담은 독특한 사진 작업이다.



80년대 후반부터 시작한 구상 회화에서는 집이나 배(船), 오리, 사슴 등 그의 등록상표와도 같은 도상이 등장하지만, 작가가 특정한 이미지를 의도한 것이 아니라 존재로 표상되는 생명력을 발현하기 위한 구도라는 것을 전시는 에둘러 이야기한다. 영상, 회화, 판화, 조각 등의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며 모더니즘을 넘어선 새로운 감각과 경험의 가능성을 표출하려 했던 작가의 작업 이력을 개념적으로 좇아간 전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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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청동 갤러리신라 서울점에서 열리고 있는 김영진 작가의 개인전 전시장 모습. 존재의 덧없음을 드러내는 듯 푸르죽죽한 덧칠을 하고 거북 위에 올라선 해골 든 불상(원제 ‘2019-84-17’·2019)과 난만한 색덩어리들이 뒤엉킨 특유의 색면 추상회화(원제 ‘24-2436’·2024)가 나란히 관객을 맞고 있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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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3년 후배인 김영진 작가는 대구에 계속 근거지를 두고 회화, 설치, 조각을 넘나들며 자유로운 조형 정신을 표출해온 자유인으로 대변할 수 있다. 갤러리 신라의 전시에서는 오롯이 40점의 영상과 설치 회화 근작들을 출품했다. 인간과 사회의 갈등과 화합을 표현해온 그의 예술인생을 ‘陽’(양)이란 주제로 표현한 작품들이다.



동해 해안가에서 두건을 쓴 인물 군상들이 서있는 조형물과 바다를 주시하는 근작 영상, 존재의 덧없음을 드러내는 듯 푸르죽죽한 덧칠을 하고 거북 위에 올라선 해골 든 불상(원제 ‘2019-84-17’·2019), 난만한 색덩어리들이 뒤엉킨 특유의 색면 추상회화(원제 ‘24-2436’·2024)가 나란히 관객을 맞으면서 작가 특유의 자유로운 조형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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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소 작가. 지난 10월31일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개막식을 앞두고 작품 앞에 선 모습이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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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소중인 김영진 작가의 모습. 갤러리신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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