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 산업이라 더 이상의 혁신이 어렵다고 생각하는가? 모리야마 히사코·닛케이 디자인의 '0.1㎜의 혁신'을 읽으면 생각이 바뀔지 모른다.
선풍기, 토스터, 가습기 같은 케케묵은 분야에서 혁신 상품을 잇달아 내놓아 일본 가전 시장의 작은 거인으로 떠오른 회사 발뮤다(Balmuda)를 취재한 책이다. 자연에 가까운 바람을 내는 선풍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빵을 굽는 토스터 같은 아이디어를 깔끔한 디자인으로 구현해 고가임에도 두꺼운 소비자층을 확보했다.
발뮤다 창업자 데라오 겐 대표는 "당연하게 쓰이는 기존 제품의 성능과 기술을 의심한다"고 말한다. 가습기를 예로 들어보자. 대기업 담당자라면 보통 '물탱크를 수도꼭지 아래에 쏙 들어가는 형태로 만들어볼까?'라는 식으로 기존 제품의 연장선에서 생각한다. 그러나 발뮤다라면 '물탱크를 꺼내고 끼우는 게 귀찮으니 아예 옮기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 보자'고 생각한다. 물탱크를 없애는 대신, 주전자로 가습기에 직접 물을 붓는 혁신이 나온 배경이다.
발뮤다의 혁신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디자인 경영의 요체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혁신의 출발점이자 목표는 '감각'이다. 데라오 대표는 기분 좋았던 감각을 되살리는 것을 제품 개발의 목표로 삼는다. 2010년 출시해 첫 메가 히트작이 된 선풍기는 '어느 여름날 오후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시원함'을 재현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는 거래하던 공장 직원들이 선풍기를 벽으로 향하게 한 뒤 부딪혀 돌아오는 바람을 즐기는 장면에서 힌트를 얻었다. 회전하며 부는 바람이 벽에 부딪히면 소용돌이 기류가 파괴되면서 돌아오는 바람이 부드러워진다. 유체역학을 활용, 이중 날개 구조를 적용해 자연에 가까운 바람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대학 진학 포기, 1년의 해외 방랑, 10년 가까운 록밴드 활동 등 오감을 활짝 열어 세상을 느꼈던 경험이 경영이라는 의외의 무대에서 꽃피우는 인생 스토리도 재미있다.
이지훈 세종대 교수·혼창통아카데미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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