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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유레카] 그래미와 뮌헨의 하얀 장미 / 전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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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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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현지시각) 제60회 그래미 시상식 ‘드레스 코드’는 하얀 장미였다. 성폭력 고발 ‘#미투 캠페인’을 이어가려고 할리우드 여성들이 만든 단체 ‘타임스업’을 지지한다는 뜻이다. 음반업계 인사들은 “역사적으로 희망, 평화, 공감, 저항을 상징하기 때문에” 하얀 장미를 선택했다.

하얀 장미는 고대부터 순결, 순수한 사랑, 평화를 상징했다. 중세 때는 성모 마리아를, 빅토리아 시대엔 구애를 뜻했다. 영국 장미전쟁 때 요크셔 가문의 문장이었으나, 본격적으로 ‘비폭력’과 ‘저항’으로 쓰인 건 나치 때 백장미단 이후부터다. 잉게 숄의 소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마르크 로테문트 감독의 영화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의 그 백장미단이다.

백장미단은 뮌헨대 학생 5명과 교수 1명이 결성한 반나치 그룹이다. 1942년 6월부터 1943년 2월까지 나치를 비판하며 저항을 촉구하는 전단지를 여섯차례 배포했다. 고작 전단지였지만, 6명 전원이 사형당했을 정도로 위험한 투쟁이었다. 한스 숄, 소피 숄 남매와 크리스토프 프롭스트는 체포된 지 나흘 만에 사형을 선고받고 세 시간 뒤 처형됐다. 한스가 단두대에서 남긴 유언은 “자유여, 영원하라!”였다.

가수 케샤는 그래미 시상식에서 동료들과 하얀 옷을 입고 ‘프레잉’을 열창했다. 전 프로듀서 닥터 루크를 상대로 제기한 성폭행 소송에서 패한 뒤 재기의 다짐을 담은 곡이다.

하얀 옷은 역사적으로 ‘여권’을 상징한다. 1908년 영국 여성사회정치동맹(WSPU)은 런던 하이드파크 여성 참정권 촉구 시위에서 세 가지 색상을 선택했다. 순수의 흰색, 존엄의 자주색, 희망의 녹색이었다. 영미권 페미니스트들이 흰 옷을 즐겨 입게 된 계기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흰 정장을 입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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