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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인사이트] 난민 할당제 반발, 동유럽으로 회귀하는 비세그라드 4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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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EU 가입 ‘유럽통합’ 상징

“민족주의·보수 기독교 가치 위배”

서유럽의 진보주의에 선전포고

EU, 영국 탈퇴 이어 동·서분열 우려

지난 3일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헝가리를 방문했다. 지난해 12월 11일 취임한 뒤 첫 해외 방문이었다. 이날 그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첫 양자회담을 했다.

2018년 EU 최대 도전은 동·서 분열

중앙일보

EU 전체 및 독일과 비교한 비세그라드 국가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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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 뒤 열린 두 사람의 기자회견은 유럽연합(EU)을 향한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오르반 총리는 “유럽은 기독교적 가치를 보호함으로써 더욱 강해질 수 있다”며 “2018년은 유럽의 다문화 가치에 대항하는 대단한 해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도 “우리처럼 한마음인 국가가 유럽의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헝가리와 연대할 뜻을 밝혔다.

이튿날 두 정상의 발언을 전한 파이낸셜타임스(FT) 기사의 제목은 ‘동 vs 서: EU에 맞서 싸우는 헝가리와 폴란드’였다. 그리고 며칠 뒤 가디언은 “유로존 개혁, 인종주의 확산, 러시아와 힘겨루기 등 유럽이 직면한 문제는 많지만, 최대 도전은 유럽 내부에 있다”며 “EU의 가치에 맞서고 브뤼셀과 대립하며 부상하고 있는 동유럽이 그것이다”라고 보도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동·서로 갈라졌던 유럽은 본격적인 통합을 시작했다. 동유럽 국가들이 EU에 편입됐고, 진정한 공동체가 마침내 완성되는 듯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오늘의 EU는 위태롭다. 영국은 EU 탈퇴를 선언했고, 동유럽 국가들은 서유럽 중심의 EU에 반기를 들면서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브렉시트 다음은 폴렉시트?

유럽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중심엔 폴란드가 있다.

폴란드는 지난해 내내 국가 정체성을 약화하고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며 EU가 도입한 난민 할당제를 거부했다. 끝내 단 한 명의 난민도 수용하지 않았고, EU는 폴란드를 유럽사법재판소(ECJ)에 제소했다.

또 정부와 여당이 법관을 임명하도록 하는 사법개혁을 둘러싸고도 EU와 갈등했다. EU는 폴란드가 법치주의 등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고 경고했고, 급기야 EU ‘리스본 조약’ 7조를 발동했다. 폴란드의 EU 의결권을 제한할 수 있는 조치로, 7조가 발동된 건 EU 출범 후 처음이었다.

폴란드는 이웃 국가를 규합해 반(反) EU 전선까지 구축 중이다. 앞서 언급한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가 폴란드의 우군이다. 이들 4개국은 91년 지역 협력체를 결성해 상호 협력해 왔다. ‘비세그라드 그룹(Visegrad Group)’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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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에 맞서는 동유럽 4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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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EU를 흔들고 분열을 조장하고 있지만, 한때 이들은 유럽 통합의 상징, EU 확장의 동력이었다. 2004년 이뤄진 4개국의 EU 동시 가입은 완전한 공동체를 향한 중대한 발걸음이 될 거라 평가됐다. 4개국도 EU를 통해 민주주의를 보장받고, 국가적 포부를 실현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폴란드는 모범생이었다. 시장경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켜 FT 는 “산업과 통화정책 모든 면에서 동유럽 국가 중 가장 신뢰성이 높은 나라”라고 평가했다. EU는 폴란드가 유럽의 가치를 동부로 퍼뜨리는 징검다리가 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현재의 폴란드는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폴렉시트(Polexit, 폴란드의 EU 탈퇴)를 경고할 지경이 됐다. 그는 지난 10일 폴란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파 민족주의 집권당 ‘법과 정의당(PiS)’이 영국을 따라 EU 탈퇴를 추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헝가리 역시 EU에 적대적이다. EU의 난민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물론, EU의 ‘간섭’에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오르반 총리는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제국이 아니라 자유로운 국가 동맹을 원한다”고 말했다. 내정간섭을 일삼으며 유럽의 중앙정부처럼 움직이는 EU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가 이끄는 극우 정당 피데스는 압도적 우위로 오는 4월 총선에서 승리할 전망이다. 당분간 헝가리의 반난민·반EU 기조는 유지된다는 의미다.

헝가리와 손잡고 “EU의 난민할당제는 주권 침해”라며 EU를 ECJ에 제소한 슬로바키아, 지난해 10월 총선에서 극우 신생정당 ‘자유직접민주주의(SPD)’가 하원에 입성한 체코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유럽의 가치’ 둘러싼 이견

이들이 EU에 일제히 반기를 든 배경엔 ‘유럽의 가치’를 둘러싼 동·서간 이견이 있다. 독일·프랑스·영국이 대표하는 서유럽은 진보주의(liberalism)야말로 유럽의 대표 가치라 여긴다. 반면 폴란드·헝가리 등은 민족주의와 보수기독교적 관점에서 그 가치를 찾는다.

독일의 도이치벨은 동유럽 국가들이 서유럽 국가가 경험한 사회민주주의 단계 없이 신자유주의를 맞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평등·연대 등의 가치는 체득하지 못하고, “서유럽보다 가난하고, 낙후됐으며, 유능하지 않다”는 콤플렉스를 가진 채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민족주의 득세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더구나 폴란드의 경우 늘 역사의 희생자였다는 피해의식 탓에 더욱 애국주의와 민족주의에 집착하게 됐다고 도이치벨은 덧붙였다.

역사적 배경 차이가 이견을 가져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를테면 독일의 경우 속죄의 의무감 때문에 난민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느낄 수밖에 없고, 식민지에서 착취와 약탈을 저질렀던 프랑스·영국·스페인 등도 원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반면 서유럽 국가들이 침탈을 일삼을 때 동유럽 국가들은 오스만 제국을 막아내야 했다. 이런 경험이 기독교적 가치를 중시하고 무슬림에 반감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이달 초 CNN은 동유럽 국가들의 격렬한 저항이 EU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유럽의 영향을 줄이고, 혈통·역사·영토를 공유하는 민족국가 간의 느슨한 동맹체로서의 EU를 원하는 이들의 희망이 어떤 식으로든 EU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2018년, 오늘의 유럽은 통합과 분열의 갈림길에 섰다.

갈등의 골 깊어진 동·서유럽 … 새로운 철의 장막 드리워질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엔 장막이 드리워졌다. 이념으로 동과 서를 가른 이른바 ‘철의 장막’이다. 최근 유럽에선 공산주의 몰락으로 사라진 장막의 부활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난민 정책을 둘러싸고 시작된 동·서유럽 가치의 충돌이 새로운 분열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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