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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모두의, 모두를 위한 문화](3)호주의 ‘ 폐쇄형’ 영화 상영 체험자들과 기자의 단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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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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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영화관’을 함께 꿈꾼 장애·비장애 청년들은 문화 공간이야말로 ‘그들끼리’가 아닌 누구에게나 열린 곳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한국장애인재활협회의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2016년 8월 호주 영화관을 방문해 폐쇄형 상영방식(화면해설과 자막을 별도 기기로 제공)을 체험하고 왔다. 당시 팀원 중 청각장애인인 노유리(21)·한빈(23)씨, 비장애인인 김영연(23)·이주연(22)씨와 사회관계망비스(SNS) 단체방에 모여 이야기를 나눠봤다.

기자 = 단톡방 초대 감사드립니다. 호주에서 폐쇄형 기기를 경험해보셨는데, 어떤 건가요?

노유리 = 개인용 자막장치인 ‘캡티뷰(Captiview)’라는 기기가 있는데 좌석에 달린 컵 받침대에 꽂아서 영화를 보는 거예요.

기자 = 한국의 개방형 상영(별도 기기 없이 특정 상영관에서 화면해설과 자막이 동시에 나오는 방식)보다 편했나요?

한빈 = 저는 편하고 좋았어요. 영화별로 자막이 기기에 저장돼 있고 블루투스 연결을 하면 해당 영화 자막이 기기에 떠요. 이런 방식으로 하면 영화 선택폭이 넓어지는 거죠. 한국에서는 모든 영화가 아닌 대중성이 큰 영화에만 배리어프리를 적용하고 있으니까요.

이주연 = 저도 좋았어요. 통역 담당이었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니까 영화 보면서 답답한 부분이 있었거든요. 자막을 통해 무슨 내용인지 확실히 확인할 수 있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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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유리 = 한정된 선택이 아니라 영화를 바로 볼 수 있었고, 모든 사람과 함께 보며 공감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어요. 한국처럼 자막을 스크린에 바로 영사하는 게 이해가 빠르긴 해요. 하지만 매달 이달의 ‘배리어프리 영화 상영 일정’ 공지가 뜰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점이 아쉬워요. 빨리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거든요.

한빈 = 최근에 영화 <신과 함께>도 배리어프리 영화 일정이 너무 늦는 데다 이미 뉴스들이 스포일러로 도배돼 있어서 피해가 있다고 느꼈어요. 개봉 전에 자막과 화면해설 작업을 하면 좋을 텐데 개봉 후에 파일을 받아 작업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영화배급사의 배려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 한국에도 폐쇄형 상영이 필요할까요?

이주연 =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쇄형 기기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년 전까지만 해도 스마트폰이 이렇게나 상용화할지 몰랐잖아요, 10년 뒤엔 호주에서 이용했던 장비의 한계를 뛰어넘은 기기가 개발될 거예요. 개방형 상영의 가장 큰 단점은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분리한다는 점 같아요. 개방형 상영을 위해 상영관 하나가 통째로 비워지는 거잖아요. 정말 나쁘게 말하면 장애인을 한곳에 몰아넣는 느낌이랄까. 폐쇄형은 다 함께 같은 공간에 앉아 즐긴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기자 = 다른 나라는 어때요?

이주연 = 저는 지금 스웨덴에서 문화향유권 연구를 하고 있는 중인데, 며칠 전 스톡홀름에 있는 스웨덴 영화위원회에 다녀왔어요. 여기는 관련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 있어서, 영화관에서 장비를 제공하지 않고 필요한 사람들이 각자 스마트폰에 연동해서 영화를 본대요.

한빈 = 뜬금없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저는 배리어프리 영화를 할인된 가격에 본다는 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제대로 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할인을 적용하지 않으면 된다는 입장이에요.

이주연 = 금전적인 할인으로 너무 쉽게 접근성 문제를 해결해버리는 느낌이에요. 시혜적 태도랄까. 국내 장애인 빈곤 계층 비율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이 부분은 고용과 지원금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스웨덴에도 장애인 할인은 없대요.

기자 = 배리어프리는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외국인 등 모두를 포함하죠?

이주연 = 네, 배리어프리는 시각·청각 장애인만을 위한 게 아니에요. 약간의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 영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어린이, 귀가 잘 안 들리거나 눈이 침침한 노인들에게도 꼭 필요해요.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고요.

김영연 = 영화를 넘어 공연예술 이야기를 하자면 서울시향 사례가 생각나요. 지난해 7월 정기연주회에서 자폐성 장애아동이 큰 소리를 내서 보호자와 함께 퇴장한 적이 있어요. 이후 서울시향이 ‘그들끼리 즐기는’ 연주회를 따로 마련했잖아요. 좋은 일이지만 결국 장애와 비장애를 분리하는 접근이죠. 클래식 공연장에 늘 젠틀하고 ‘잘’ 관람할 수 있는 사람만 올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감각장애뿐 아니라 발달장애인도 문화향유권에서 배제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빈 = 이렇게 접근성이 미약한 상황에서 고령화사회를 맞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접근성과 문화향유권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해요. 또 공간도 생각해야 해요. 영화관이 가파른 경사에 지어지면 장소 접근성부터 차단되는 것이니까요.

김영연 = 특수교육과 통합교육이 공존해 장애당사자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하듯이, 영화도 개방형과 폐쇄형 중 각자 편한 방식을 택할 수 있는 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팀원들도 장애 정도나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관람 형태가 달랐어요. 두 방식 모두 발전되려면 제작배급사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한데, 그러자면 법제화가 되어야겠죠. 인식도 개선돼야 하고요.

<시리즈 끝>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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