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7 (월)

사업주 반기지 않고 재정 부담 늘어나는데…정부 일자리안정자금 내년까지 연장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김동연 부총리 “일자리안정자금 한해 지원하고 중단할 수 없어”
사업주들 ‘단기 지원’에 신청 꺼리자 내년 지원 연장으로 선회

정부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민간 영세 사업자가 부담해야 할 최저임금 인상분의 일부를 세금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최대한 한시적으로 운영하겠다던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혼란이 계속 되자 내년에도 일자리안정기금을 통해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부가 일자리안정자금 연장을 추진하는 이유는 대체할 만한 제도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7월까지 저소득 가구에 세금을 환급해주는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 방안을 마련해 일자리안정자금을 대체하려고 했지만 지급 대상·지급 기준·정책 효과가 확연히 달라 어려움을 겪었다. 또 일자리안정자금은 사업주들이 ‘단기 지원’이라는 인식 아래 신청을 꺼리고 있는데, 정부가 이들의 신청도 유도하기 위해 시행 연장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자리안정자금은 최저임금이 인상될수록 현금으로 지원해줘야 할 대상과 지급액이 눈덩이 처럼 불어난다. 당장 내년 최저임금이 올해 보다 더 올라가면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영세 사업장들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필요한 예산이 3조원(올해 일자리안정자금 예산)을 훌쩍 넘어설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오는 2020년 시간당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겠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조선비즈

조선일보DB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8일 중소기업중앙회를 방문해 “일자리 안정자금은 한해 지원하고 중단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김 부총리는 지난해 말 국회 전체회의에서는 “일자리 안정자금은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것에 정부와 국회가 견해를 같이 한다"라며 “지원 기간에 대해서는 집행 상황을 점검한 뒤 결정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한시적 시행’을 강조하던 김 부총리가 ‘내년에도 시행 가능’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최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혼란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올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현장의 초기 혼란이 예상 보다 훨씬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영세 사업장들을 중심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감당하지 못해 폐업하거나 근로자들을 해고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일자리안정자금을 대체할 수 있는 뾰족한 수단은 찾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안정자금은 급격하게 오른 올해 최저임금(지난해 보다 16.4% 인상, 7530원)을 감당하기 어려운 30인 미만 고용 사업장을 4대 보험 가입 등을 조건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해당 사업장에서 월급 190만원 미만을 받는 근로자들의 임금 중 13만원은 사업주 대신 정부가 세금으로 지급한다. 총 2조9707억원 규모의 예산이 올해 책정돼 약 300만명의 근로자들이 지원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자리안정자금은 민간 기업의 임금을 정부가 세금으로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논란이 많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 7월까지 저소득 가구에 세금을 환급해주는 EITC 등 간접적인 소득 보전 방식이 마련되면 최대한 내년부터는 일자리안정자금을 시행하지 않는 방안도 검토 중이었다. 그러나 정부 내에서는 일자리안정자금과 EITC는 지급 대상과 지급 방식, 정책 목표가 달라 비슷한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조선비즈

조선일보DB



사업주들이 일자리안정자금이 단기 지원이라고 신청을 꺼리고 있는 점도 정부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주고 있다. 고용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일자리안정자금을 신청한 사업주는 2500명에 불과하다. 정부는 사업주가 최저임금 인상 후 첫 월급을 준 후 일자리안정자금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 신청률이 저조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다르다. 사업주들은 일자리안정자금의 지급 기준인 ‘근로자 1인당 월급 190만원 미만’과 ‘고용보험 가입’을 맞추기 힘들다며 신청을 꺼리고 있다.

특히 일자리안정자금이 단기 지원이라는 점이 신청률을 떨어트리고 있다. 고용보험 미가입 사업주의 경우 일자리안정자금을 받기 위해 신규 가입을 할 경우 근로자 1인당 4대 보험료 약 월 15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당장 내년부터 일자리안정자금 지원이 끊기면 최저임금 인상분에 4대 보험료까지 모두 사업주 부담이 된다. 사업주들 입장에서는 올해 근로자 1인당 월 13만원을 받기 위해 일자리안정자금을 신청하는 것은 이득 보다 손실이 더 많은 것이다.

정부가 현장에서 최저임금 혼란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같이 일자리안정자금 신청률까지 낮자 사업주들을 설득하기 위해 ‘내년 지원 유지’라는 카드를 검토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일자리안정자금을 올해 이후에도 계속 시행할 경우 필요한 예산은 계속 불어날 가능성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관련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년 최저임금도 올해 대비 약 15% 올려야 한다. 내년에는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영세 사업장들이 더 많아질 수 있는 것이다.

야당은 지난해 예산안을 심사하면서 오는 2020년 1만원을 위해 최저임금을 계속 인상할 경우 일자리안정자금에 필요한 예산이 한해 10조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여야는 이러한 문제점을 우려해 지난해 예산안을 통과시키며 오는 2019년 이후에 일자리안정자금을 계속 시행할 경우 현금 직접 지원 예산은 3조원을 초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그러나 단서 조항은 오는 2019년 이후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정부는 내년에는 3조원 이상의 일자리안정자금 예산을 편성할 수 있다.

정부가 일자리안정자금을 연장 시행하면서 사업주들의 신청을 더 늘리기 위해 ‘근로자 1인당 월급 190만원 미만’과 ‘고용보험 가입’ 등의 조건도 손을 댈지 관심이 집중된다. 관련 조건까지 손을 볼 경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가 늘어나 내년에 필요한 예산 규모는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고용보험 미가입장에 대해 혜택을 준다는 점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일자리안정자금을 처음부터 시행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비판한다. 현금 직접 지원은 한번 시작하면 중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정부가 사업주도 반기지 않고 정부도 부담스러운 무리한 제도를 시작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進退兩難)’에 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입법학회 오일석 박사는 “정부가 일자리안정자금 시행에 조금 더 신중한 접근을 해야 했다”며 “최저임금 인상과 일자리안정자금을 무리하게 시행한 후 뒷수습을 하다 보니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일자리안정자금을 내년까지 시행한다고 해도 사업주들의 신청이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경기도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56세)씨는 “일자리안정자금을 신청하지 않는 것은 단기 지원에 지급 기준이 까다로운 것도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일자리안정자금 제도 하나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라며 “일자리안정자금이 내년까지 이어져도 신청할 생각은 없다”라고 말했다.

세종=전슬기 기자(sgjun@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