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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학생들 졸음 막으려 ‘역사 사진’ 활용해 재미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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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짬】 ‘한 컷 한국 현대사’ 펴낸 표학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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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한 컷 한국 현대사>의 저자 표학렬씨가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책 속에 든 인물과 서대문형무소의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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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역사 교사인 표학렬씨가 쓴 <한 컷 한국 현대사>(인문서원 펴냄)는 한 장의 사진을 통해 그 시대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책이다. 1919년 3월 시흥보통공립학교의 졸업식부터 시작해 70년대 공장에서 텔레비전을 조립하는 여공들의 모습까지 모두 33장의 흑백사진이 담겨 있다. 그가 옛 사진에 주목한 것은 ‘국사 시간에 학생들이 졸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11일 재직중인 한양대사대부고 근처의 카페에서 표씨를 만났다.

어릴적 ‘사극’ 보면 사전 찾아 공부
사학과 진학해 고교 교사로 20년째
“국사시간 엎드려 자는 아이들 충격”


현대사 풍부한 사진으로 “흥미 자극”
1919년부터 70년대까지 33장면 골라
“교과서에 없는 ‘여성 활약’ 강조해”


그는 어릴 적 텔레비전 사극 드라마를 보면서 역사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마침 집에는 아버지가 사다 놓은 <국사대사전>(이홍직 외)이 있었다. 가족들이 다 함께 <안국동 아씨>를 보고 나면 막내아들인 그가 <국사대사전>에서 실제 역사 속 혜경궁 홍씨를 찾아서 읽어주곤 했다. 물론 가족들은 모두 신통해했다. 그 덕분에 중·고교에서도 국사와 세계사 공부를 잘했고 역사 선생님들과도 친하게 지냈으니 대학에서 사학과를 택한 것 또한 자연스러웠다.

<한 컷 한국 현대사>는 그의 8번째 책이다.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역설적이다. 1998년에 처음 교단에 섰을 때 국사는 필수과목이었다. 학생들이 성적이 잘 안 나온다며 아우성을 치면서도 정작 수업시간엔 모두 엎드려 자는 것을 보고 놀랐다. “무조건 잠에서 깨우는 것이 첫번째 목표였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으로 대사를 만들어서 웅얼거리며 외웠다. 연극 무대에 선 배우처럼 수업을 했다.”

그러다 7차 교육과정 때 국사가 필수에서 빠졌다. 표씨는 “선택과목이 되니까 오히려 국사를 배우려는 아이들과 수업을 하니 더 좋았다. 그래도 자는 아이들을 깨워야 하니 재미있게 수업해야 했다. 예를 들어 ‘의정부 서사제와 육조 직계제는 이런 것이다’라고 설명하면 아이들이 다 잔다. 깨우기 위해서는 왜 만들어졌는지, 태종은 어떻게 왕이 되었고 무슨 고민이 있었는지에 대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설명했다. 그 내용들을 모아서 2012년부터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에피소드 한국사>(근현대 편) 등의 책을 내기 시작했다. 2016년 고3 수험생들부터 다시 국사가 필수과목이 되었는데 아직까지는 시험이 어렵지 않아 재미있는 수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단다. “국사가 암기과목이 되면 곤란하다. 역사는 깨닫는 것이지 외우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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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버튼’ 양복을 즐겨입던 ‘멋쟁이 신사’ 시절의 이봉창 의사.


그는 현대사 과정엔 풍부한 사진 자료를 활용했다. 특히 사건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상징 사진을 골랐다. 예를 들어 책의 62쪽에는 이봉창 의사가 화려한 ‘더블 버튼 양복’을 입고 있는 사진이 등장한다. “거사를 결의하며 폭탄을 양손에 든 사진이 아니라 ‘더블 버튼’을 골랐다. 이 의사는 애초엔 독립운동에 관심이 없었다. 가난하게 태어나 악착스럽게 돈을 벌었고 식민지 현실을 잊어버리려고 술을 마시고 여자도 사귀면서 쾌락적으로 살았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게 되는 사건을 겪는다. ‘덴노(천왕)의 용안을 한 번은 봐야 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고 일본에 갔다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당했고, 열흘 뒤 풀려나 보니 일반인들이 덴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열흘간의 행사가 막 끝난 뒤였다. ‘뛰어봤자 조선인이구나. 한 번 엎어버리자’고 결심하고 무작정 상하이 임시정부를 찾아가 김구 선생를 만난다. 처음엔 김구 선생도 일본옷 입고 일본말 쓰는 이봉창을 의심했으나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누릴 만큼 누렸다. 이제 영원한 쾌락을 위해 우리 독립사업에 헌신하고자 한다’는 그의 말에서 진심을 느끼고 덴노의 마차에 폭탄을 던지는 거사에 그를 투입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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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한 컷 한국 현대사>의 저자 표학렬씨가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뜰에서 책 속에 든 인물과 서대문형무소의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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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씨는 특히 한국사 수업에서나 책에서 ‘여성의 존재’를 강조한다. ‘우리, 독립을 노래하노라’ 편(72쪽)에 실린 1938년 3·1절 기념 단체사진에서도,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추적했다. “사진에 등장한 여성들의 행적을 찾아보니 전선에서 광복군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비밀공작 업무를 받아 국내에 잠입한 사람도 있었다. 여성들이 뒤에 있었다고 생각하지 마라. 여성들은 전선과 후방, 어디서나 싸워야 했으니 더 힘들었다.”

그는 마지막 사진인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편에서 70~80년대 수출의 역군은 여성들이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때 통계를 보면 남녀 노동자의 성비가 거의 일대일이다. 그럼에도 영화 <국제시장>에서처럼 ‘김윤진’은 간호사를 하다가 집에 들어앉아 살림을 하고, 여동생 ‘김슬기’는 허영에 차서 ‘황정민’을 베트남까지 가도록 만드는 이야기 구조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표씨는 “실제로는 오빠 학비를 벌기 위해 여공이 되거나 하녀가 되는 것이 그 시대 여성들의 아픔이었다. 한국의 근대화와 산업화에 끼친 여성들의 공로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남녀평등이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처럼 남성 위주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부정적으로 비치는 것이다. 광복군에서부터 동일방직(책 294쪽)까지 여성들의 활약이 컸다”고 설명했다.

글·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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