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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천만영화 뻔한 공식 이게 최선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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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듀나의 영화불평



한겨레

영화 <신과함께>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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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죄와 벌>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계속 미루다가 원작을 읽지 않은 터라 이에 대해서는 원작의 독자들이 더 할 말이 많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고, 두번째 이유는 원작과 상관없이 영화 자체에 큰 매력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영화가 재미있었다면 지금쯤 허겁지겁 원작까지 챙겨 읽고 둘을 엮어가며 온갖 이야기를 다 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리얼>이나 <브이아이피>처럼 이를 갈면서 험담을 할 정도로 불쾌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영화는 좋고 나쁨을 떠나 그냥 맹숭맹숭했다.

얼마 전 <신과 함께―죄와 벌>은 2018년 첫 천만영화가 되었다. 하지만 이 흥행 결과가 이 영화의 가치를 입증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으며, 이 영화의 어떤 점이 천만명이나 되는 관객을 매료했는지를 분석하려는 시도는 어이없다고 생각한다. <신과 함께>가 첫 천만영화가 된 가장 큰 이유는 광고를 엄청 때렸고 상영관을 잔뜩 잡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남아 극장을 찾은 사람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번 일요일에 멀티플렉스에 아는 사람을 몇명 데려가야 하는 내 입장은 난처하기 짝이 없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다른 한국 대작 영화들, 그러니까 <강철비>와 <1987>은 어떤가? 적어도 이들은 이야기의 재미 면에서 <신과 함께>를 능가한다. <강철비>는 한반도의 긴장 상황을 배경으로 그럴싸한 내수용 밀리터리 스릴러를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고 <1987>의 각본은 기존 80년대 회고 영화와는 달리 날렵하고 창의적이다. 두 편 모두 긴장감이 상당한 편이고.

하지만 이들 역시 익숙한 그림 속에 있다는 생각을 거둘 수가 없다. 도입부의 설정은 강렬하지만 <강철비>의 재료는 대부분 전에 다 본 것들이다. 북에서 온 살인병기(난 이들을 더 이상 구별할 수가 없다), 체제를 넘어선 브로맨스, 소망성취적 결말, 기타 등등. 창의적인 각본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1987>의 회고적 정서가 다른 80년대 회고 영화와 그렇게 다른가? 난 이 공통된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 당시의 젊은이들이 모두 중장년이 된 30여년 전의 과거는 여러 가지 면에서 객관적으로 돌이켜보기엔 까다로운 시기다. 아, 캐스팅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난 이 영화들의 시사회를 같은 주에 연달아 보았는데, 계속 기시감을 느꼈다. 최소한 네 명의 남자배우가 두 편 이상의 영화에 겹쳐 출연했던 것이다. 그들은 (가나다순으로) 김의성, 이경영, 조우진, 하정우다. 이 정도면 한국 영화계의 빈약한 배우 풀과 그들을 놀리는 사람들의 게으름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돈 잘 버는 대작 영화의 진부함에 대한 불평은 그 진부함만큼이나 익숙하다. 하지만 전자와는 달리 후자는 멈출 수 있는 게 아니다. 대안이 없지는 않다. 내가 올해 본 가장 훌륭한 영상물은 에롤 모리스의 <어느 세균학자의 죽음>과 돈 허츠펠트의 <월드 오브 투모로우 제2부>였는데, 이들은 모두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볼 수 있다. 인터넷과 텔레비전이 지금 정도의 기능만 해도 극장 따위는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극장의 마법을 천만영화의 이벤트를 위해 포기해도 된다는 이유가 되는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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