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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연합시론] 존엄사법 시행, 아직 보완할 문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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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소생 불능 환자가 연명 의료 여부를 스스로 결정토록 하는 '연명의료결정법(존업사법)' 시행에 앞서 벌인 시범사업이 15일 종료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23일부터 80여 일의 시범사업 기간에 사업참여 10개 의료기관 입원 환자 중에서 임종과정에 접어들어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하겠다고 밝힌 사람은 60여 명이다. 지금은 건강하지만 미래에 소생 불능의 임종기를 맞으면 연명 의료에 매달리기보다는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삶을 마감하는 존엄사를 선택하겠다는 뜻을 담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제출한 일반인(19세 이상)도 8천5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법적으로 연명 의료는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시도하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연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4가지 의료행위를 말한다. 정부는 다음 달 4일부터 존엄사법 시행에 들어간다.

시범사업 기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등록 기관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등 5곳에 불과한데도 작성자가 8천500여 명이나 몰린 것은 주목할 만하다.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건강한 사람들의 높은 관심과는 달리 환자들의 참여는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아직도 환자들에게 연명 의료 중단이라는 말을 꺼내기 힘든 분위기와 가족에게 최대한 치료를 해주려는 우리 사회의 효(孝) 문화가 영향을 미친 것 같다는 게 복지부의 분석이다. 합법적 존엄사를 선택한 60여 명 대다수는 의사로부터 질병 상태, 치료 방법, 연명의료계획서 변경·철회 절차를 듣고 연명 의료 계획서를 작성했다. 계획서를 쓰지 못하고 임종기를 맞은 환자에 대해서는 환자 가족 2명 이상의 진술, 환자 가족 전원합의를 바탕으로 연명치료를 중단했다고 한다.

존엄사법의 본격 시행까지 남은 기간에 준비해야 할 일들은 많다. 우선 이 법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적용되지만 그 기준이 명확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를 들어 대뇌 손상으로 의식이 없고 운동기능도 상실했으나 자가호흡이 가능한 환자를 법 적용 대상으로 볼 것인지, 혹은 말기 암 환자 중 어떤 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임종과정에 해당하는지 등의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환자가 사전 의향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의식불명에 빠졌을 때 가족들이 상속 목적이나 치료비 부담 등의 이유로 존엄사를 악용할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참여 의료기관이 10개에 그쳤던 시범사업 기간과는 달리 본격적인 법 시행에 들어가면 현장에서 여러 예기치 못한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다. 계획서 작성 간소화와 의료기관 대상 집중교육, 대국민 홍보를 통해 혼선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한, 정부가 2월에 법 개정에 나선다고 하니 시범사업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의료계, 법조계, 종교계 등이 제기하는 우려를 충분히 반영하길 바란다.

호스피스 시설 등 인프라도 부족하다. 호스피스 전문 의료기관은 전국 80여 개에, 병상은 1천320여 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암 사망자(7만8천여 명) 가운데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이용한 비율이 17.5%에 그쳐 미국(52.0%), 영국(46.6%) 등에 크게 뒤처져 있다고 한다. 정부는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존엄사를 택한 환자들이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인프라를 서둘러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인간으로서 품위있는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배려하는 것이야말로 존엄사법의 취지도 살리고, 우리 사회에 웰다잉 문화를 정착시키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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