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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독자칼럼] 태국 `대나무 중립외교`서 배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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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태국은 1238년 수코타이 왕조가 세워진 이래 지금까지 780년 동안 독립을 지켜왔다. 그 역사를 반추해 보면 지나친 명분보다는 실리 추구 정신에 근간한 '대나무 중립외교(Bamboo Neutral Diplomacy)' 노선이 두드러진다. 반면 우리는 주변 강대국 중 어느 한편에 기울어 명분지상주의의 극단의 싸움을 하자는 '척화파'가 번번이 득세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는 '꼿꼿한 소나무가 거센 비바람에 정면으로 맞선 채 부러졌다가 어렵사리 척박한 대지에서 다시금 싹을 틔워 왔던 역사'를 가진 반면에, 태국은 '굳건히 독립을 지키다가도 외세가 밀려들면 슬며시 휘어졌다가 다시 나라를 곧추세우는 대나무 같은 역사'를 지닌 나라다.

19세기 무렵의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 20세기에 있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 기간,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대표되었던 동서 냉전 시대 속에서도 태국이라는 나라가 굴욕적인 불평등 조약이나 영토 상실을 입지 않고, 소실대득(小失大得)으로 '국토와 국민 그리고 왕조'를 지켜낸 원동력 중 하나가 바로 '대나무 중립외교'였다. 물론 이러한 태국의 처신이 '기회주의적인 명분상실의 대외정치술'이라 여겨져 세계 외교사의 도마에 오르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국가와 국민'을 절대 가치로 두고 추구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태국은 늘 그들만의 원칙을 고수해 왔다고 볼 수 있다.

태국에서 살기에 자주 이 나라 스타일로 식사를 하다 보면, 재미있는 현상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동남아 국가들은 동양의 '숟가락'과 서양 문화의 '포크'를 차용·접변해 동시에 사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태국은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도 다르게 유독 식탁에 오른 음식을 각자의 입맛에 맞게 직접 조미(調味)하는 '크르엉 뿌룽'이라는 양념 가미 용구를 추가로 사용한다. 한마디로, 태국은 숟가락을 고수하면서도 서양 포크를 차용할 뿐 아니라 이미 식기에 담긴 요리조차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조미하는 도구를 사용하는 독특한 식사 문화를 갖고 있다.

태국의 역사는 이렇듯 '양손에 각각 숟가락과 포크를 들고 자신들이 스스로 양념해가며 그들만의 밥그릇(국가, 국민, 왕조)'을 지켜내 왔다. 이러한 태국의 '대나무 중립외교'는 현재의 우리나라가 처한 한반도 군사 외교적 상황을 살펴볼 때 각별히 눈여겨볼 가치가 충분하다.

[전창관 한국태국학회 해외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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