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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거래소 폐쇄’까지 갔던 정부 ‘가상통화 대응’ 원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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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국무조정실 공식 입장 정리

‘폐쇄안은 법무부 단독의견’

차분한 대응은 사라진지 오래

여론따라 춤추는 정부 대응

통제 어려운 시장가격따라

대응 수위 정하느라 우왕좌왕



한겨레

박상기 법무부장관이 최근 가상통화 거래소 폐쇄 방침을 밝히고 난뒤 정부 부처 내 혼선을 빚다가, 15일 다시 정부 규제 대책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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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선을 거듭해온 정부의 가상통화 규제 대응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지난 11일 박상기 법무부장관이 ‘거래소 폐쇄’라는 초강경 처방을 내놓으면서 파문을 일으켰지만, 이는 정부 내 조율을 거치지 않은 법무부만의 구상인 것으로 정부가 공식 정리한 것이다. 이처럼 정부가 가상통화 대응에서 우왕좌왕하는 것은 수시로 바뀌는 여론 등에 정부 대응이 춤을 추고 있기 때문이란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하반기 관련 대책 마련에 나서면서 강조한 ‘차분한 대응’ 원칙은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거센 바람을 타고 옮겨가는 불씨의 꽁무니만 좇는 화재 진압형 대응 방식이 혼선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정기준 국무조정실 경제조정실장은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가상통화 실명제를 차질없이 추진하는 한편 시세조작, 자금세탁, 탈세 등 거래 관련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검찰, 경찰, 금융당국의 합동조사를 통해 엄정 대처해 나갈 계획이다. 최근 법무부장관이 언급한 ‘거래소 폐쇄 방안’은 범정부 차원에서 충분한 협의와 의견조율 과정을 거쳐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 실장은 2분여 간 정부 입장문만 읽었고 기자들의 질문은 받지 않았다.

이날 입장문 발표는 지난해 12월28일 정부가 밝힌 ‘특별대책’ 수준으로 정부 대응 기조가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래소 폐쇄’를 내민 법무부안은 정부가 염두에 두고 있는 여러 안 중 하나로 다시 원위치했다. 청와대 정책실 관계자는 “청와대에 법무부장관 사형을 청원하는 글이 올라올 정도로 법무부안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들끓는 상황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정부 내에선 박 장관이 너무 경솔하게 강경 기조를 외부에 공개했다는 비판도 나온다”고 말했다. 법무부만 홀로 이날까지도 ‘거래소 폐쇄’ 방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가상화폐 거래소를 규제하겠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니까 잘 논의해 보겠다. 법무부는 거래소 폐쇄 쪽으로 계속 주장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 장관 발언 당시와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태도다.

이런 되돌림은 예견된 일이었고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지난해 9월 정부가 범정부 대응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린 뒤 줄곧 강조한 기조는 ‘투기 과열 근절’이었는데, 이를 판단하는 잣대는 분명하지 않다. 지난달 특별대책부터 최근 거래소 폐쇄 방안이라는 초강경 대책까지 규제 강도가 계속 높아진 것은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이 30~40% 수준에서 계속 유지된 점이 주된 배경이었다. 이는 김치 프리미엄이 어떤 이유에서든 낮아지게 되면 정부의 규제 수준이 다시 낮아질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김치 프리미엄만’을 규제 강화의 핵심 근거로 보기도 어렵다. 외려 정부가 가장 염려하는 부분은 가상통화 시세의 변동성 그 자체라는 지적이다. 실제 비트코인 등은 여타 금융자산과 달리 실물 자산과 전혀 연결돼 있지 않는 터라 가격 예측 자체가 매우 어려운 속성이 있다. 김치 프리미엄이 잡힌다고 해서 정부가 규제에 손을 놓을 가능성이 낮은 이유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가상통화는 정무적으로 부담을 가질 만한 사회 현상으로 본다. 만일 혹시라도 (가격이) 붕괴되거나 경착륙했을 때 경제적 타격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 미칠 영향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지난 14일 영화 관람 후 기자들과 만나 “(과거) 키코 사태를 보면 개인 탐욕 때문에 덤볐다가 안 되면 정부 탓하고 그랬다. (가상통화도) 터지고 나면 그 땐 또 정부를 탓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격이 지나치게 올라도 문제이지만, 가격이 폭락하더라도 부담이 된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이렇듯 정부가 통제하기 어려운 시장 가격에 따라 정부 대응 수위가 정해지다보니, 정책은 오락가락하게 된다.

이에 견줘 정부의 대응 준비는 매우 허술하다. 한 예로 정부가 규제 강화책으로 꼽는 과세안을 마련중인 기획재정부 내에선 최근 두달새 담당부서가 금융세제팀에서 부가가치세과로 옮겨가더니 올들어선 재산소비세과로 바뀌었다. 매매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물릴지, 부가세를 물릴지 혹은 거래세를 부과할지도 여전히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기재부의 한 과장급 간부는 “정부가 특정 세목으로 과세한다고 천명한다고 해서 일이 끝나지 않는다. 현재로선 세원을 파악할 수 있는 인프라 자체가 없기 때문에 자칫 과세 방안을 밝히고나서도 세금은 한푼도 못거두는 상황이 올수도 있다”며 “일에는 순서가 있는데 그런 침착성을 정부가 잃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가상통화와 그 기반기술인 블록체인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도 최근에야 시작됐다. 한국은행이 지난주 자체 연구모임을 꾸린 데 이어 금융감독원도 15일 태스크포스 연구팀을 발족한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지난 10일 김동연 부총리 주재로 외부 전문가들을 초청해 블록체인 기술 등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기재부 국장급 간부는 “대부분 간부들이 비트코인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다는 걸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털어놨다.

김경락 성연철 김양진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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