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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91)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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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로스차일드家의 5개의 화살뭉치 이야기는 사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출처:구글


로스 차일드家의 상징물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5개의 화살묶음으로 된 그림이 하나 있다. 로스 차일드 형제들의 단합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 화살 때문에 나중에 미국 달러화 뒷면에 있는 화살과 동일시하여 로스 차일드가 미국을 조정한다는 음모론 까지 대두된다. 이런 로스 차일드는 독일어로 '붉은 방패'인 롯트쉴트를 영어식으로 부른 이름이다. 한마디로 독일과 오스트리아 사람이 아니고서는 'Rothschild'를 모두가 로스(Roths)家의 아이들(child)인 줄 알았을 것이다. 로스 차일드 이야기를 자꾸 하는 이유는 이왕 부자를 알려면 부자의 왕을 모델로 이야기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다. 이름에 이미 방패가 있으니 주로 화살을 통해 그들의 공격성과 협동을 강조했을 것이다. 원래 협동이라는 것 자체가 공격성을 내포하고 있으니 말이다. 수렵시대이나 농경시대에는 자녀가 큰 재산이었다. 집안에서 일손은 언제나 부족했기 때문이다. 수렵이든 농사일이든 많이 공들일수록 더 자기 주머니로 들어오는 노동집약적(산업시대가 와도 이 패턴은 계속 이어진다.) 일이기에 좀더 쳐다보면 볼수록 할 일이 더 많아지는 법이니 땅을 가진 아버지의 눈에 아들들의 몸놀림은 그저 느려터져 보일 뿐이다. 정보화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을 농경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 산업화를 통해 부를 쌓은 기성세대가 이해 못하는 이유다. 움직일 수록 더 기회가 생기고 그럴 수록 부(富)는 더 늘어만 간다. 절대로 가만이 있을 수 없는 이유다. 젊은 세대들이 멍하니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그들은 이해할 수 없다. 기성세대들이 보기에는 그 시간에도 자기 것을 만들 수 있는 부(富)가 우주공간으로 사라지는 것만 같을 것이다. 본부장이 보기에는 두 진영의 마음가짐 모두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둘 다 이해도 된다. 관점의 문제인데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속도를 보는 관점이다. 젊은 세대는 빠른 오답보다 느린 정답을 더 원한다. 그만큼 옳고 그름의 문제에 민감하다. 물론 자신의 기준에서 말이다. 나이든 기성세대는 그냥 빠른 행동을 원한다. 그게 정답이든 아니든 아무 문제가 안 된다. 오로지 즉각적 행동이 곧 정답이다. 어떠한가? 기성세대가 이런 사고방식을 가졌을 것이라고는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여러분에게는 부모이거나 윗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속마음을 절대 발설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들의 속내를 재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아직까지 부자들이란 분들은 여러분들보다 먼저 산 기성세대와 또 그들보다 미리 산 옛날세대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들이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가 없다. 그들이 이미 그런 옳고 그름에 관심이 없이 행동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항상 서로 답답했던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그 답답함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생존본능으로 완전 무장된 기성세대들의 논리적 타당성은 점점 퇴색되어갈 것이다. 모두가 생존 이후의 삶에 더 큰 관심을 가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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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 유니콘 사이에 화살을 불끈 쥔 손이 그려진 방패밑으로 ‘협동, 성실(자조), 근면’.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새마을 운동 문구다. 청년들은 잘 모르겠지만. 출처:구글


자본주의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19세기이후부터 부자의 가장 대표적인 표준이 된 로스차일드 모델을 많은 후발 금융 가문들이 따랐다. 산업혁명으로 기업이 노동력 확대문제에서 해방되고 나니 남은 것은 기계를 사서 돌릴 자본이 필요했다. 아마 이때 금융 자본이 돈 무지하게 벌었을 것이다. 생산자는 생산에 전념하다 보면 어느 순간 돈에 대한 개념을 잃어버리고 오로지 영역확대에 치중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원래 기업이 이익을 내야 하는 집단이긴 하지만 그것이 최종적 가치는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은 무분별한 영역 확장의 우(憂)를 범하게 된다. 이런 리스크를 막기 위해 주주들로 구성된 이사회를 두는 것이다. 부자들 중 금융업을 시작한 부자들이 가장 원조부자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돈이 먼저 있던 사람이 나중에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금융을 제공했을 테니 말이다. 결국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유럽에 기반을 둔 금융회사들의 비율이 압도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전세계적으로 국적에 대한 관념이 가장 무의미한 것이 종교와 금융이다. 로마 카톨릭에서 국적은 하위개념일 뿐이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세계 어느 곳을 불문하고 종교는 끊임없이 개종의 대상을 찾고 금융은 돈 투자하거나 빌려주고 결국 거두어들일 대상을 찾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엄청난 번영을 이루었던 일본이 가장 힘들어 했던 것도 금융이었고 현재 G2라고 불리는 중국이 앞으로 더욱 곤욕을 치를 분야도 금융일 것이다. 자본주의 성숙단계에서 가장 시간을 요하는 부분이 무엇이겠는가. 기술개발이나 기계를 만들고 아니면 아무 것도 없는 공터에 공장을 확충하고 돈을 빌리는 노력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도 힘들기 때문에 지구상에 대부분의 나라가 후진국으로 머무는 것이다. 유교문화권으로 전통적으로 근면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들었던 경험이 있는, 노동력이 풍부했던 동아시아 지역이 그래서 그나마 신흥국으로 부상한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성숙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요하는 것이 바로 금융이다. 금융은 그야말로 그 사회의 복합문화다. 돈은 종교나 인종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따지지 않고 찾아가지만 금융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혼자 있으면 다 똑같다. 하지만 그들만의 시스템이 만들어진 후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백인, 흑인, 동양인이 세 명만 같이 살면 문제가 없을 공간에 각각 10명씩 살면 문제는 달라진다. 모여 사는 존재이기에 인간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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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을 통해 반드시 승부를 가려야 한다. <선택의 일반화(一般化)> 출처:구글


유럽이나 미국은 금융의 성장기간이 길다. 그리고 그 기간 중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전쟁 그리고 탐험이다. 전쟁과 탐험은 인간에게 언제나 선택을 요구한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의 기로 말이다. 잘못된 선택은 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가문 전체의 파멸을 의미하기에 언제나 신중해야 했고 또 신속해야 했다. 유럽에서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게 함락되면서 시작되고 30년전쟁으로 촉발된 기존질서의 해체와 새로운 질서와 함께 찾아온 것은 엄청나게 긴장된 환경으로의 변화였다. 이전 질서에서는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소수의 희생양이라는 것을 통해 다수의 대중들이 직접적인 생존경쟁에서 벋어나 있었으나 새로운 질서에서는 다수의 대중이 그대로 생존경쟁이라는 긴장된 환경으로 내몰리게 된다. 그 이후로 400년동안 서구는 자본주의 성숙에 가장 중요한 부분인 금융의 성숙화를 경험하게 된다. 바로 '선택의 일반화(一般化)'다. 대영제국 발전의 기초가 두 가지가 있다. 하이드 파크와 엘리자베스 1세다. 전자는 영국신사들이 선택하기 전 거닐었던 공원이고 후자는 역사의 기로에 선 조국에 내밀어진 운명의 선택지를 받아 들고 과감하게 동그라미를 친 군주이다. 그리고 대영제국 확장의 첨병이 2가지가 있다. 영국 금융조직과 MI6다. 금융 기관과 첩보 기관이 얼마나 선택에 일반화되어 있어야 하고 또 신속하게 결단해야 하는 기관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로스차일드家가 유럽대륙에 뿌려놓은 정보망이 만약 정확한 판단을 통한 선택을 내리지 못했다면 결코 나폴레옹의 패배를 미리 예상하고 오늘날의 확고부동한 위치를 점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동아시아 국가들이 겪는 가장 큰 스트레스가 바로 선택의 고통(苦痛)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이들은 선택이라는 시험지를 받아들여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는 물론이고 개인들도 안정 또는 정체된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제한된 방어적인 활동을 해왔다. 국가 엘리트들 또한 국가간의 국제적 관계나 국내적 사회시스템을 주체적으로 바꾸려는 의지도 부족했지만 그럴만한 한계상황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이러한 구조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웠던 일본의 경우도 선택의 순간에는 여지없이 순조롭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단과 선택은 틀린 것이다. 결단이란 무리적인 행동에 기반을 둔 결정행위라면 선택은 일상적인 사고방식의 문제이다. 그래서 결단이란 정치적인 영역인 것이고 선택이란 다분히 일상적인 생활에 기반한 사회적인 부분이다. 일본이나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에서 특히 편의점 문화가 발달하고 있는 것도 바로 어려운 선택을 회피하고 쉬운 선택을 하고 싶은 이 지역 국가들의 사회적 단면이다. 아시아 문화는 이렇게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게끔 답을 정해주는 문화에 역사적으로 너무나 익숙해 왔다. 그리고 그러한 쉬운 선택이 결국 옳은 선택이라는 것이라는 자신도 모르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처럼. 자본주의적인 삶은 사실 기독교 특히 개신교의 삶과 일치한다. 그래서 궁극적 행복을 위한 절차적 고행이나 희생을 신성시한다.(스티브 잡스가 동료인 매즈니악과 조직 내 불화를 일으킨 요인도 사실 사물을 바라보는 종교적 시각차였다. 그는 동양의 선(禪) 사상에 근거해서 주로 생각했다.) 이슬람교들이 가장 기독교를 비판할 때 주로 쓰는 비난이다. 자타르타 공항에서 만난 한 사우디아라비아 신혼 부부가 초롱초롱한 눈을 뜨고 한 말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정말 이들 말대로 천년 만에 이슬람의 전성시대가 다시 올지는 미지수(未知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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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해 본 경험상 눈이 동그랗게 튀어나오고 코가 크며 입이 도톰한 관상이 모험심이 강하다. <프랜시스 드레이크> 출처: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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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이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를 말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역사상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가장 글로벌화된 세대이다. 민족이나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 자신만의 내면적 휴머니즘에 근거해 움직인다. 따라서 언제든지 선택가능하고 무엇이든지 결단할 준비가 되어 있다. 다만 그것이 보편적인 기준에 올바르다면 말이다. 얼마나 훌륭한 말인가? 얼마 전에 결정된 브렉시트는 영국 내 기성세대들의 옛 추억을 위해 젊은 세대의 희생을 강요한 것이다. 400년 동안 지속되어온 국가주의 같은 편가르기는 이제 무의미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에서 더 이상 추가적인 생산적인 가치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도 1대를 넘어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생체적인 부모마저도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일반적인 객체로 인식될 것이다. 반대로 생체적인 가족보다 더한 존재가 출현할 것이다. 반려동물이 그런 현상을 대변한다. 이러한 형식적인 가족의 해체가 결국 국가의 해체로 일어지기까지 순식간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가족도 인정 안하는 개인이 국가를 인정하겠는가. 이것은 단순한 동기부여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지금의 기성세대들이 험한 꼴을 보지 않으려면 매우 잘 해야 한다. 하고 싶은 얘기 너무 많이 하지 말기를 당부 드린다. 반면에 젊은 M세대들은 이제 '마음속의 이야기를 절대 다 하지 않는다'는 19세기 대영제국 시절 영국신사들이나 갖는 어른스러움마저 체득한 상태이다. 여기에 가장 무서운 무기가 하나 더 있다. 너무나도 사소하고 작은 즐거움에 사로잡힐 줄 안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심각하면 진다고 했다. 이들만큼 거기에 잘 부합되는 세대도 없다. 잡스가 만들어놓은 전세계가 하나로 어딘가로 이어지게 한 웜홀이 본부장도 사실 무섭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의 기성세대들이 귀따가울 정도로 늘 하는 말처럼 '이것도 현실이다'라는 것이다. 다만 이것은 기성세대의 부자들이 익숙한 극복할 대상으로서의 현실이 아니라(극복하기에는 그 끝을 알 수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한다) 오히려 올라 타고 일단 가 보아야 할 미래인 것이다. 마치 지금은 너무나 익숙한 비행기 여행이 40년전만 하더라도 하늘에 기도를 하고 타야 할 운송수단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굶어 죽기 직전인 영국을 등지고 대서양을 출발해 전세계 일주를 했을 때 그의 마음 속에는 사실 배고파도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조촐하지만 너무나 따듯한 고향의 벽난로가 간절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그 벽난로를 포기하게 만든 것은 미지의 보물뿐 아니라 사실 배위에서 맡아보는 시원한 바다 바람이었을 것이다. 어떤 시대이든 처음과 나중에는 공통점이 있다. 2000년전, 1000년전, 400년전, 300년전, 200년전 그리고 앞으로의 올 시대의 처음에는 언제나 '작은 즐거움에도 사로잡힐 준비가 된 어른스러운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어느 시대의 마지막에서 지루함과 무료함에 몸부림치는 풍요로운 세대를 생각하지 못할 세상을 보여줄 것이다.

[정민우 청년의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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