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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시론] 시장 거스르는 정책이 일자리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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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권 등 시장 경제 보장해야 개인·기업들 투자와 고용 늘려

경제원리 이해 빈약한 정책은 시장과 괴리된 채 겉돌 뿐

선거의 熱情으로 만든 공약도 현실의 冷靜 결합해 재탄생해야

조선일보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베네수엘라 정부는 작년 4월 미국 자동차 회사 GM의 현지 공장 설비와 자산에 대해 몰수 조치를 내렸다. 35년간 현지 자동차 시장 점유율 1위를 지켜온 GM에 대한 하급 법원의 판정 직후 내린 결정이다. GM 측은 "불법적인 자산 몰수"라며 법적 대응을 벌이고 있다. 2016년 여름 생활용품 기업 킴벌리 클라크가 원자재를 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생산 가동을 중단하자, 베네수엘라 정부는 "의도적으로 생산을 중단했다"며 공장을 몰수해 국영기업으로 바꿨다. 몰수 조치에 반발해 자산 압류 반환소송을 낸 기업만 20여 개나 된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최근 20년 동안 이렇게 몰수한 민간 기업은 1400개가 넘는다.

이는 1999년 집권한 고(故) 차베스 전 대통령 이후 계속된 '사회주의 혁명'이 기업들과 충돌하면서 빚어진 사례들이다. 주목되는 것은 차베스 정권 이후 국유화가 추진되자 대다수 다국적 기업들이 철수하거나 투자 계획을 철회했다는 점이다. 시장 경제의 가장 기본인 재산권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나라에 투자를 하거나 고용을 늘릴 기업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

최근 벌어진 가상(假想)화폐 거래소 폐쇄 논란의 경우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거래실명제와 자금세탁·가격조작 방지를 위한 모니터링 강화 같은 감독은 필요하다. 가격 급변에 따른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하는 규제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거래소 폐쇄와 시장거래 자체의 중단은 투자자 입장에선 자신의 자산 가치를 소멸시킬 수 있어 심각한 재산권 훼손 가능성이 우려된다.

기업과 개인의 투자 결정에서 이런 정책 리스크는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재산권 자체를 위협하지 않더라도, 영업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거나 발생한 수익을 회수할 수 없다면 신규 투자를 주저하게 될 것이다.

일자리 창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역대 정권마다 모두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면서 일자리 논의가 무성했다. 그러나 정작 일자리를 만드는 주체인 기업과 경제 원리에 대한 이해가 빈약하다 보니, 상당수 정책이 시장과 괴리(乖離)된 채 겉돌 수밖에 없었다. 모든 투자가 일자리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투자 없이는 일자리 창출이 불가능하다. 새로 가게를 열고 회사를 키우고 공장 설비를 늘릴 때, 새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정부가 단편적인 면에 치우치거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정책을 구사하면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생긴다. 최저임금 인상도 그렇다. 임금은 지불해야 하는 당사자에겐 큰 비용이다. 그런데 이를 단기간에 급격히 상승시키면, 고용주는 가격을 올리거나 또는 투자와 고용을 줄인다.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다. 그렇기 때문에 핵심은 최저임금 인상 자체가 아니라 인상의 폭과 속도이다.

부동산 보유세의 경우, 부동산 양도소득이나 금융소득 같은 자본소득 전반에 과세(課稅)한다면 의미 있다. 그런데 자본소득 과세 강화와 보유세는 다르다. 집값이 올라 얻은 소득이나 임대에서 발생한 소득에 세금을 내는 것은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의 일반 원칙에 부합한다. 그러나 실현되지 않은 소득에 대한 세금인 보유세는 소득 흐름과 무관해 다른 세금을 줄이지 않고 이것만 높이면 무리가 따른다.

집은 보유하고 있지만 소득이 없거나 소득이 적은 은퇴 중·장년층은 보유세가 오르면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경제 전체의 위축이다. 또 임대 수요가 많은 지역에서는 오히려 그 부담이 전·월세 계층으로 전가(轉嫁)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선거의 열정(熱情)으로 만든 공약은 현실의 냉정(冷靜)과 정교하게 결합해 다시 탄생할 때, 세상을 의미 있게 바꿀 수 있고 현 정부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열매도 맺을 수 있다. 그동안 일부 불공정성이 있었던 시장의 문제점과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 정책은 다각적인 측면을 숙고해 세밀하게 설계되고 신중하게 발표되어야 한다. 시장경제의 원리를 거슬렀던 시도는 어두움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반(反)시장적 정책을 남발했다가 줄줄이 몰락한 여러 중남미 정권들이 이를 증명한다. 인간 본성에 기초한 시장경제의 원리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거나 정치적 구호에 따라 결정되는 정책은 그 자체가 위험요인이며 경제와 투자, 그리고 일자리에 부정적인 결과를 낳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장을 이기는 정책은 없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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