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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이코노 서가(書架)] 돈을 움직이는 건 '보이지 않는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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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자본 없는 자본주의'〈사진〉라는 책 제목은 얼핏 모순(矛盾) 같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은 더 이상 과거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자본이 아니다. 예전에 자본은 기껏 건물이나 기계와 같은 실물자본 또는 그 구매에 투입된 화폐자본을 의미했다.

1960년대에 프리츠 매클럽(Fritz Machlup)과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경제의 본질이 실물이나 화폐가 아니라 지식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어서 1990년대에 웹과 정보통신기술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지식경제론이 부상했다. 그럼에도 21세기 경영자, 정책가, 노동자의 사고는 지난 세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바뀌지 않으면 도태당한다. 이 책은 그런 변화에 대한 절박한 요청이다.

저자 조너선 하스켈과 스티안 웨스트레이크는 우선 국민소득을 추계하는 국민계정과 기업의 성과를 측정하는 회계 방법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기획, 연구개발, 교육훈련, 브랜딩, 설계, 디자인 같은 활동이 실제로 장기에 걸쳐 성과를 낳는 투자임에도 지출의 상당 부분이 당기 지출로 처리되곤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국민소득 추계나 투자 의사결정 기준 상당 부분이 왜곡됐다.

무형자본이 과거의 유형자본과 구분되는 4대 속성으로 투입비용의 복구불가능성(sunk cost), 외부 주체에 대한 용이한 확산성(spillover), 적용 규모의 신축성(scalable), 그리고 서로 다른 무형 자본 간 용이한 결합성(synergy)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하는 저자의 많은 진단이나 정책 제안은 기존 지식경제 이론에서 거론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다음 세 가지 진단은 매우 신선하다.

첫째, 만성화된 저성장은 단순히 기계가 노동력을 대체하기 때문이거나 기업가의 투자 심리가 위축되어서가 아니다. 국민소득 계측 절차에 내재한 무형자본의 과소평가 문제점, 그리고 무형자본의 용이한 확산성과 회수 불확실성 때문에 발생하는 과소투자 성향이 근본 원인이다.

둘째 양극화는 무형자본을 생성하고 활용하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기업, 그리고 그런 자본을 체화한 신자본가로서 전문 인력들이 급격히 부상했기 때문이다. 셋째, 양극화의 한 원인이기도 한 부동산 가격 상승은 단순히 통화량 증가나 투기 심리 때문이 아니다. 도시라는 공간이 지닌 다양한 지식과 무형자본의 집적지로서의 매력이 근본 원인이다.

부동산과 기계장치 같은 유형자본은 앞으로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할 것이다. 다만 무게의 축은 현저하게 이동했다. 지렛대의 잘못된 지점을 잡고 아무리 힘을 써봤자 효과는 좀체 나지 않는다. 언제까지 금리나 지출 조절로 경제와 기업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미신에 사로잡혀 있을 것인가?





송경모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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