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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행복하려 애쓰는 당신… 피곤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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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피로사회] [1]

중산층 이동 사다리 무너지며 행복에 매달리는 사람들

'작지만 확실한 행복' 트렌드… 가상 화폐 광풍에 의미 없어져

"돈을 행복이라 여기는 문화, 타인의 경제적 성공에 불행 느껴"

대한민국은 지금 행복 때문에 피곤하다. 지난 연말부터 '소확행(小確幸·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이 떠오르면서 '작은 행복'을 찾으려 했는데, 신년 벽두부터 가상 화폐 광풍이 불어닥쳤기 때문이다. 누가 몇 백억을 벌었네, 누구 때문에 100조원이 날아갔네 하는 판에 무슨 작은 행복이냐는 것이다. 오히려 행복을 좇으면 좇을수록 더 불행해진다는 '행복 피로감'이 한국 사회에 번지고 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직장인 고모(32)씨는 소셜미디어에 '소확행'이란 해시태그를 더는 쓰지 않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소확행'은 여우의 신 포도 같은 것이었어요. 나도 수십억씩 벌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고, 실제 가상 화폐로 그렇게 벌었다는 사람을 보면 괜히 짜증 나고 우울하고…. 사진 한 장 올리고 '소확행'이라고 쓴다 해서 행복이 인증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제 행복에 집착하지 않으려고요."

지난 10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가상 화폐로 340억원을 벌었다. 도와드릴 만한 분 10명에게 1억원씩 드리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14일 현재 댓글이 1만개에 육박한다. 모두 '주식으로 전 재산을 날렸다' '사기를 당했다' '이혼 소송 중이다' 등의 글과 함께 자신의 계좌번호를 올린 사람들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커녕, 한 방에 신세를 바꾸려는 사람들로 들끓는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주부 박윤영(40)씨는 "너도나도 행복을 외치지만 젊은 세대는 가상 화폐 얘기만 하고 중년들은 집값 이야기만 한다"며 "결국 돈이 행복이란 것 같아 '행복'이란 단어를 말하기도 꺼려진다"고 말했다.

조선일보가 SM C&C의 설문조사 도구 '틸리언 프로'로 지난 9일부터 사흘간 전국 20~50대 남녀 1073명에게 물어보니, '지난 1년간 행복한 척해본 적 있는가'란 질문에 전체 61.98%(665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49.86%)는 '지난 1년간 행복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본 적 있다'고 대답했다. 최근 한 달간 행복 지수를 묻는 질문에 '매일 불행하다'가 7.2%, '매일 행복하다'는 대답은 5.22%였다.

조선일보

서울대 사회학과 김석호 교수는 "행복은 개인적 감정인데 우리나라에선 사회·경제적 성공을 행복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이에 따라 남들보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으면 불행하고, 남이 돈을 많이 벌면 내 불행에 가속도가 붙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산층으로 가는 계층 사다리가 무너지면서 그 반작용으로 일어난 현상이 '행복 집착'이라는 설명이다.

세계 석학들은 "행복에 매달리는 것은 불행해지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미국 심리학자 에밀리 에스파하니 스미스는 "행복에 대한 집착이 사회를 더 우울하게 한다"며 "행복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내용의 강연으로 작년 동영상 사이트 '테드'에서 높은 인기를 끌었다. 외국 베스트셀러인 영국 심리연구가 데런 브라운의 '해피', 스위스 경제학자 겸 작가 롤프 도벨리의 '불행 피하기 기술', 미국 블로거 마크 맨슨의 '신경 끄기의 기술'이 모두 그렇게 강조한다.

경북대 심리학과 김지호 교수는 "행복이 보여주는 것으로 변하고 사회 양극화가 행복 양극화로 치달으면서 집단주의 사회가 똑같은 행복을 달라고 요구하는 수준까지 왔다"며 "거시적인 차원에서 계층 이동 사다리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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