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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노트북을 열며] 경포119안전센터에서 온 새해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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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문병주 사회 부데스크


이래저래 새해 해맞이를 놓쳤다. 마음을 다잡아야 할 이유가 많아 어디선가에서는 떠오르는 해를 보고 싶었다.

아쉬움은 몇 시간뿐이었다.

이날 오전 인터넷에 고발성 글과 사진들이 뜨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경포119안전센터 앞을 해맞이 관광객들의 차들이 막고 있어 소방차가 움직이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빨간색 ‘119’ 글씨가 선명한 건물 앞마당을 가득 메운 승용차들 사진도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경포119안전센터 앞마당이 주차장으로 변하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해돋이 시간이 다가오면서 차를 댈 장소가 없어졌고, 한 대가 센터 앞마당으로 방향을 틀자 뒤이어 오던 차들이 줄줄이 따랐다. 비상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소방관들이 일일이 차량 주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119센터 앞마당이 제 모습을 찾기까지 40분이 넘게 걸렸다.

지난해 12월 충북 제천 화재 당시 불법 주차 차량을 옮기느라 소방차의 진입이 늦어졌던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상기시키는 장면이었다. 이를 계기로 국회에서 소방행위를 방해하는 불법 주정차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들이 속속 처리되고 있다. 다시는 119안전센터 앞마당에 불법 주차를 하는 이들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작 걱정되는 건 따로 있다. 지난 가을 동해의 명승지를 구경하기 위해 입구까지 수㎞ 늘어선 차들 사이에 섞여 30분 이상 기다리고 있었다. 목적지에 다다랐을 즈음 앞차와의 간격이 조금 벌어진 사이로 승합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끼어들었다. 간신히 브레이크를 밟아 추돌을 피했다. 가족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

혹시 운전석 창문이 열릴까, 미안하다는 신호가 올까 기다렸다. 뒤 창문이 열렸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 둘이 고개를 쑥 내밀고 무표정하게 쳐다봤다. 열린 창문 사이로 운전석의 중년과 옆 좌석 노인이 대화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3대가 가족여행을 온 모양이었다. “30분씩 줄 서는 사람들이 바보지”라는 식의 대화가 아니었길 바랐다. 경포119안전센터 앞마당에 주차한 해맞이객들 중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이 있다면 “주차를 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해맞이 못할 뻔했다”는 말을 나누지 않았길 빈다.

이날 상황은 이 센터 소방관의 블로그에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다. ‘상식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회의적 글과 함께다. 반면 이를 보거나 전해 들은 다수가 ‘상식을 지키며 살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을 것으로 믿는다.

해맞이보다 더 소중한 2018년 첫날의 선물이었다.

문병주 사회 부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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