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
교사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한 남자 교사가 여자 교사에게 "교장선생님께 한 잔 따르지"라고 말한 것은 성희롱일까. 법원은 성적 의도가 포함된 발언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경북의 한 초등학교 교감 A씨(67)는 2002년 9월 자신의 학교 교사들과 함께 한 회식자리에 참석했다. 교장을 비롯해 10여명의 교사들이 모였다. 교장은 이 자리에 있던 교사들에게 모두 술을 따라줬다. 이후 남자 교사들은 대부분 잔을 비웠지만 여교사 3명은 잔을 비우지 않고 테이블 위에 잔을 내려놨다.
이에 A씨는 "여선생님들, 잔 비우고 교장선생님께 한잔씩 따라드리세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교사들은 이후에도 술잔을 비우거나 교장에게 술을 권하지 않았다. A씨는 한참 뒤 "여선생님들 빨리 잔들 비우고 교장선생님께 한잔 따라드리지 않고"라고 재차 말했다.
이 자리에 있었던 여교사들 중 한명인 B씨(43)는 회식 이후 A씨가 여교사 3명에게 두차례에 걸쳐 교장에게 술을 따르라는 취지의 말을 한 후 특히 자신을 지목해 "교장선생님께 필히 한잔 따르지"라고 말하는 등 성희롱을 했다고 주장하며 여성가족부에 시정신청을 냈다.
이후 여성가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는 A씨의 행위를 성희롱으로 결론내리고, 해당 초등학교에 대해 '향후 교직원들의 회식문화를 개선하고 전교 직원을 대상으로 재발방지를 위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한다'는 내용의 의결을 해 이를 학교에 통지했다. 이에 A씨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교장선생님이 술을 한잔씩 권했으니 여교사들도 교장선생님에게 한잔 권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일 뿐이라며 성희롱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으로부터 술을 받았으면 답례로 윗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것이 예절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특히 해당 발언에는 전혀 성적인 의미가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회식 참석자들이 주로 학습에 대한 대화를 한 점 등에 비춰보면 A씨가 B씨 등이 여성이기 때문에 교장에게 술을 따라야 한다는 성적 의도를 가지고 해당 발언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밖에 B씨를 제외한 다른 여교사들이 A씨 발언을 불쾌하게 생각했으나 그로 인해 성적인 굴욕감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진술하는 점도 중요한 판단 요인이 됐다. 재판부는 "A씨의 언행이 우리 사회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관행에 비춰볼 때 용인될 수 없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판결은 2심 재판부와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유지됐다. (2005두6461)
한편 법원은 성희롱에 대해 다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설명이다. 어떤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쌍방 당사자의 연령이나 관계, 성적 동기나 의도의 유무, 행위의 계속성 여부 등 구체적 사정을 종합해 그 행위가 선량한 풍속 또는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인지 여부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다.
이와 관련, 법원 관계자는 "당사자가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다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성희롱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법적인 관점에서 성희롱인지 여부를 판단할 때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의 기준을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정수 기자 jeongsu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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