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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인간의 조상이 개와 공존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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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표준어라도 어원을 이해하지 못하면 때로 심각한 오해를 불러온다. 대표 사례가 경제학(經濟學)이다. 경제학은 '세상을 다스려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의 한자어 경세제민(經世濟民)에서 왔다. 근대 일본 학자들이 번역한 용어라고 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자. 경제학이 이렇게 거창한 학문인지. 경제학은 서양에서 건너온 학문이기 때문에 그들 언어로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영어로 경제학은 'economics'다. 경세제민 같은 거대 담론이라기보단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쓸지 따진다는 의미에 가깝다. 수요에 턱없이 부족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나눠 최대한 많은 개체 수를 유지하는 목적에 따르지만 말이다. 경제학은 경제세민보다는 유전자 보존의 생존법에 가깝다.

현생인류, 즉 호모사피엔스가 처음 마주친 강력한 경쟁 상대는 네안데르탈인이었다. 둘 다 불을 쓸 줄 알았고 두뇌 용량도 비슷했으며 도구를 사용할 줄 알았다. 신체적 조건은 네안데르탈인이 되레 우월했다. 평균 에너지 소비는 현생인류보다 네안데르탈인이 7~9% 많았다. 근육량이 더 많아 근접 거리에서 매머드를 사냥했다.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와 전쟁 끝에 멸종했다는 가설은 개연성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왜 현생인류는 살아남았고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을까? 팻 시프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저서 '침입종 인간'에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현생인류가 처음 등장한 환경을 생태계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다. 이를테면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부시맨이 뚝 떨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모래를 퍼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뭔가 잡아 먹어야 하는데, 이는 부시맨이 사막 생태계에 진입한다는 의미가 된다. 뱀이든 사막여우든 잡아먹어야 사는데 때로는 최종 포식자 매와 먹이 경쟁을 벌여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4만년 전 현생인류는 네안데르탈인이 최상위 포식자로 지배하던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주했다. 부시맨이 사막에 떨어진 것처럼 말이다. 이를 두고 시프먼 교수는 '침입종'이라고 부른다. 마침 당시는 빙하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며 먹이가 급격히 줄어들던 때였다.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은 매머드, 순록 같은 초식동물이라는 한정된 먹이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에 놓였다. 그동안 네안데르탈인이 곰, 사자, 하이에나, 늑대 등과 평화롭게 공존하며 먹이를 나눴는데 생태계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네안데르탈인은 경쟁에서 패배했다. 차이는 간단했다. 시프먼 교수는 현생인류가 개(원문은 늑대개)를 기르면서 급격히 우위를 보였다고 본다. 네안데르탈인에게 개는 초식동물 먹이를 둔 경쟁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현생인류는 발상을 전환했다. 개가 의외로 순종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현생인류는 개와 함께 사냥에 나섰다. 개는 인간이 가지지 못한 예민한 후각과 날카로운 이빨을 갖고 있어 파트너로 제격이었다. 개가 먹이를 공격하는 동안 현생인류는 창을 던져 원거리에서 공격했다. 물론 사냥이 끝나면 개와 먹이를 나눴다.

반면 네안데르탈인은 기존 생존 전략을 고집했다. 풀숲에 매복해 있다 먹이가 나타나면 덮쳐 사냥하는 방식을 버리지 않았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와 개의 연합군이 먹이를 싹쓸이하면서 차츰 굶어죽었다.

물론 시프먼 교수의 주장은 가설에 그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네안데르탈인은 자기 자신의 생존에만 집중하다 현생인류와 개의 연합군에 패배해 멸종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경제학의 목적인 생존법으로 돌아가 보자. 많은 경제학자는 자원 배분의 원리로 이기적 동기와 경쟁만을 강조한다. "우리가 저녁을 먹는 것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 때문"이라는 애덤 스미스의 일갈처럼 말이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본질로 들어가면 좀 더 복잡하다. 이기심의 근본에는 생존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 자신과 가족이 먹고살려면 경쟁자를 물리치고 먹이를 먼저 차지해야 하니 이기심과 생존은 같은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을 잘 살펴보면 이기심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식동물 먹이를 두고 경쟁하던 개와도 손잡은 현생인류는 네안데르탈인과 생존 경쟁에서 승리했다. 우리 조상은 단순한 생존 경쟁보다 협력과 연대가 효율적인 생존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모른다.

[김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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