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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영원한 오빠 로커 본 조비 로큰롤 명예의 전당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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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존 본조비 /사진=AP


[스쿨 오브 락-36] 지난번 글에서 본 조비의 전반기 활동에 대해 짚어본 바 있다. 사실 아직까지도 일부 록 골수 팬(?)들 사이에서는 본 조비가 무슨 록 밴드냐는 식의 폄하 발언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이 유독 달콤하고 절절했다는 원죄를 제외하고, 그들의 1980년 중반 눈 화장이 그 당시 나름의 유행이었다는 두 가지 변수를 빼고 보면 본 조비를 유독 경시하는 일부의 시선에는 썩 공감이 가지 않는 편이다. 록 음악 가사가 꼭 사회비판적이거나 록 밴드 보컬과 기타가 야수 같아야 한다는 관념이 선입관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본 조비가 지금 시대에 데뷔해 비슷한 성과를 거뒀다면 아마 비판 목소리는 크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음악계의 주류가 록에서 힙합을 위시한 흑인음악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록신을 이끌 기대주가 나타났다며 응원의 분위기가 조성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본 조비가 데뷔할 당시에는 록 신에서 거친 헤비메탈의 인기가 워낙 높았던 시기였기도 했고, 덩달아 록이 음악계 주류로 행세하며 한껏 가치가 높을 때였다. 따라서 "록음악이란 모름지기 이래야만 해"하는 자아가 고양되었던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본 조비를 놓고 유독 야박한 평가가 내려진 것은 이 같은 배경이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거론한대로 본 조비를 경멸했던 많은 밴드가 사라져간 사이 이들은 굳건히 활동을 유지해왔다. 때마침 13일(현지시간)에는 본 조비가 현 록 음악계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는지 명명백백하게 시비를 가져줄 결과가 나왔다. 본 조비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것이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조직위원회는 13일 본 조비를 비롯한 4개 밴드를 2018 명예의 전당 대상자로 발표했다. 본 조비는 팬 투표에서 116만2146표를 얻어 당당하게 1위에 올랐다. USA 투데이는 "본 조비는 전 세계 1억3000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올리고 록밴드로서는 드물게 전 세계 어디서든 초대형 콘서트 입장권이 매진되는 인기를 누렸지만 그에 맞는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소개했다. 리더 존 본 조비(55)는 "정말 기쁘고, 마음이 놓이고, 겸허해진다"는 소감을 밝혔다.

팬 투표 순위를 보면 정말 흥미로운 결과를 볼 수 있다. 2위가 무디 블루스(94만7795표), 3위는 다이어 스트레이츠(61만3749표), 4위는 더 카스(55만2733표)였다. 아쉽게 최종 명단에 오르지 못한 5위가 바로 헤비메탈 지존으로 불리는 주다스 프리스트(53만8508표) 였다.

'스쿨오브락' 칼럼을 연재하면서 주다스 프리스트를 가장 먼저 소개한 바 있다. 헤비메탈 영역에서 신처럼 군림하는 노장 밴드다. 헤비메탈 레전드를 꺾고 본 조비가 명예의 전당에 올라갔으니 헤비메탈 팬 입장에서는 경악을 금치 못할 상황이다. 이외에도 라디오헤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등이 후보에 올랐지만 입성에 실패했을 정도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은 오르기 힘든 자리다. 첫 음반을 내고 25년이 지나야 후보 자격이 주어진다. 엘비스 프레슬리, 밥 딜런, 레드 제플린, 비틀스, 롤링 스톤스, 빌리 조엘 등이 역대 수상 대상자다. 최고 중의 최고로 인정받아야만 오를 수 있는 자리라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본 조비가 압도적인 1위로 명예의 전당 자리를 따냈으니 이제 본 조비가 록밴드냐 아니냐는 논쟁은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것 같다.

앞선 글에서 이들의 네 번째 앨범까지의 행보를 소개했다. 이번 글에서는 이후 본 조비의 역사에 대해 다룬다. 본 조비의 다섯 번째 앨범은 1992년에 킵 더 페이스(Keep The Faith)란 이름으로 나왔다. 여기에는 타이틀 곡 킵 더 페이스와 베드 오브 로지즈(Bed Of Roses)가 인기를 끌었다. 이들 곡은 '빌보드 톱 10'에 오르며 본 조비가 여전히 '먹히는 밴드'라는 걸 보여줬다. 2년 뒤에 나온 본 조비의 여섯번째 앨범은 한국 팬들에게 적잖은 의미가 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록발라드 중 하나인 올웨이즈(Always)가 바로 이 앨범에 실려 있다. 올웨이즈는 빌보드 싱글 차트 2위까지 올랐는데, 다수의 1위 싱글을 내놓은 본 조비 입장에서는 밴드 역사상 가장 사랑받았던 곡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전혀 다른 평가를 받을 것이다. 본 조비를 상징하는 대표곡 중 하나로 그 자리가 굳건하다.

올웨이즈는 특유의 아름다운 뮤직비디오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 당시 한국에서는 막 케이블TV 시대가 열려 해외 아티스트 들의 따끈따끈한 뮤직비디오가 방송되기 시작한 때였다. 이때 가장 많이 방송을 탔던 뮤직비디오 중 하나가 올웨이즈기도 했다. 노래방에서 이 곡을 부르는 사람도 적잖게 찾아볼 수 있었다(그러나 완창하기는 매우 어려운 노래다. 심지어 본 조비도 최근 들어서는 이 곡을 무대에 올리는 걸 힘겨워한다. 달달한 톤을 유지하면서 곡을 절정으로 끌고가 터트렸던 존 본 조비의 전성기 역량이 새삼 탁월함을 느낄 수 있다).

1995년에 나온 여섯 번째 앨범 디즈 데이즈(These Days) 역시 디스 에인트 어 러브 송(This Ain't A Love Song)이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이들은 잠시 잠수에 들어간다.

밴드 입장에서 1990년 대 말은 애매한 시기였다. 본 조비의 출발은 1980년대다. 록이 음악계 주류였던 시기였다. 헤비메탈이 특히 인기를 끌었던 때였고, 본 조비는 헤비메탈처럼 보이는 흐트러진 머리로 사랑노래를 격정적으로 부르는 콘셉트로 큰 인기를 끌었다. 1990년대 들어와 이들은 차분해졌고 잔잔한 록발라드를 부르는 데 최적화된 모습으로 진화했다. 그런데 록의 주류가 헤비메탈, 하드록에서 얼터너티브로 넘어갔다. 유려한 멜로디가 강조되던 시장이 반복되는 리프와 허무함으로 무장한 너바나 등 그런지 위주로 재편됐다. 본 조비 입장에서는 혼란의 시기였다. 그런지를 하는 본 조비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존 본 조비의 드라마틱한 보컬이 너무 아까웠다. 블루지한 기타를 지향하는 리치 샘보라(Richie Sambora) 입장에서도 갈 수 없는 길이었다. 그렇다고 주구장창 불러대던 발라드 넘버를 판에 박은 듯이 또 내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1995년 이후 5년간의 본 조비 행보에는 이 같은 상황이 녹아났다. 존 본 조비는 영화배우로 변신했고 솔로앨범을 냈다. 샘보라 역시 솔로앨범을 통해 밴드 본 조비로는 할 수 없는 여러 실험적인 시도를 했다.

이때의 활동이 밴드 본 조비 입장에서는 큰 자양분이 됐을 것이다. 이들은 2000년 새롭게 돌아온다. 앨범 크러시(Crush)를 내놓는다. 타이틀곡이 그 유명한 잇츠 마이 라이프(It's My Life)다. 한국인이 올웨이즈 못지않게 사랑하는 본 조비의 히트곡이다.

이 곡은 직전 앨범 등에서 선보였던 발라드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하는 흥겨움 측면만 보자면 오히려 밴드의 초기작에 더 가깝다. 하지만 지금 관점에서 다소 촌스러웠던 현란한 화장과 과장된 무대매너는 싹 사라졌다. 중년으로 부르기에는 아직도 너무 잘생긴 멤버들의 말쑥함과 댄디함은 남았다. 새 천년을 맞아 타이틀곡을 '잇츠 마이 라이프'로 정한 것은 상징적인 의미도 있을 것이다. 5년의 기다림을 통해 성숙해진 이들에게 팬들은 아낌없는 화답을 보냈다. 정작 이곡의 빌보드 싱글 순위는 30위권 바깥으로 기대에는 못미쳤다. 하지만 앨범을 800만장 넘게 팔아치우며 본 조비가 여전히 세계 시장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밴드라는 걸 보여줬다. 게다가 2000년 초반은 림프 비즈킷, 콘 등 힙합과 메탈을 결합한 '뉴 메탈'이 득세할 때였는데 본 조비는 지극히 본 조비 다운 앨범으로 막강한 인기를 과시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게다가 본 조비를 '삼촌 세대 밴드'로 알았던 수많은 10대들이 새로 팬층에 편입됐다. 이 앨범이 의미가 있는 것은 이를 바탕으로 본 조비가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는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5년을 기다려 만든 이 앨범이 실패했다면, 본 조비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았다면 본 조비는 바로 '과거 유명했던 밴드' 정도로 그칠 상황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 조비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는 데 가장 기여한 앨범이 크러쉬라고 얘기한다면 과한 표현이 될까.

이후로도 본 조비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2002년에는 바운스(Bounce) 앨범을 내놨다. 바로 이듬해 기존 발매된 곡을 어쿠스틱 버전으로 만든 디스 레프트 필즈 라이트(This Left Feels Right)를 출시한다. 2005년 나온 해브 어 나이스 데이(Have A Nice Day)에 실린 후 새즈 유 캔트 고 홈(Who says you can't go home)으로는 그래미상 컨트리 듀엣상을 안겨준다. 본 조비의 첫 그래미상 수상이었다. 록 팬들 비판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활동해온 본 조비의 세월과 노력를 그래미도 알아주기 시작한 것이다.

2007년 로스트 하이웨이(Lost Highway) 2009년 더 서클(The Circle) 등 이들의 앨범 발매는 꾸준히 이어졌다. 2013년에 이어 2015년에도 새 앨범을 내놨을 정도로 이들은 현역 밴드다. 2015년에는 샘보라가 밴드에서 탈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의 추천곡 역시 너무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일단 올웨이즈와 잇츠 마이 라이프는 넣어야 할 것 같다. 베드 오브 로지즈(Bed of Roses)와 아일 비 데어 포유(I'll Be There For You), 네버 세이 굿바이(Never Say Goodbye)는 절절하다. 시원하고 화끈하기로는 역시 리빙 온 더 프레이어(Livin' On A Prayer)가 제격이겠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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