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에서 발간한 `의약품 안전정보 보고동향`에 따르면 국내에서 의약품 부작용으로 보고된 건수가 2012년 9만2375건에서, 2016년 22만8939건으로 늘었다. 약물 유전체 검사는 의약품 처방과 신약 개발에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분야다. 녹십자지놈 연구원이 약물 유전체 검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녹십자지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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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다섯 살 직장인 강 모씨는 직장에서 제공하는 건강검진 프로그램에서 부부 동반으로 수면 위내시경을 받았다. 같은 병원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검사를 했는데도 강씨는 아내보다 한참 늦게 의식을 찾았다. 강씨는 "엄밀히 말해 의식이 깨어있어 수면 상태는 아니라고 하던데, 나는 한참 정신을 못 차렸고 아내는 금방 깼다더라"며 "사람마다 약물에 대한 반응도가 달라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직접 경험해보니 생각보다 큰 차이여서 놀랐다"고 말했다.
# 내년 환갑인 주부 오 모씨는 당뇨 판정을 받고 지난달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다. 주치의는 약물처방 당시 부작용으로 위장장애가 올 수 있다고 설명하고 평소 위가 약한 오씨가 불편하면 약을 바꿀 테니 위 상태를 주시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오씨는 "평소에도 위가 자주 쓰려서 고생했는데 약 2주간 약을 먹으면서 더 안 좋아진 것 같아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약을 바꿨다"며 "바뀐 약이 더 비싸긴 하지만 알약 크기가 작아 먹기도 좋고 속도 편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개인별 맞춤의료와 유전체 분석 연구의 발전은 우리 삶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특히 유전체 분석이 가장 먼저 꽃피울 분야로 희귀질환 진단과 약물 처방이 꼽힌다.
최근 13년간 뇌성마비인 줄 알았던 환자가 희소병인 세가와병이라는 것이 뒤늦게 밝혀진 사례가 공개되면서 관심을 모았다. 유병률이 200만명 중 1명꼴인 세가와병은 유전자 검사로만 진단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희소병 환자와 보호자들이 길게는 수년 동안 무슨 병인지도 모른 채 여러 병원을 전전하고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쓰리빌리언 등 유전체 분석 기업들은 이런 환자들을 위해 유전자 검사로 4800종의 희귀질환을 한 번에 진단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해 출시를 앞두고 있다. 비용은 500~1000달러 수준으로, 국내에서는 규제 때문에 내놓지 못하고 미국 시장에 먼저 선보인다.
잊을 만하면 의료사고 뉴스가 나오는 약물 부작용도 중요한 분야로 떠올랐다. 예전에는 약이 모자라서 문제였지만, 지금은 약이 넘치면서 '적정 진료'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주요 선진국에서 약물 부작용은 암 등에 이어 사망 원인 4위다. 미국에서만 270만명이 입원 처치가 필요한 중증 부작용에 시달린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김주한 서울대 의대 교수팀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전 국민 처방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유전자 16개를 보는 1인당 2만원짜리 검사만 해도 연간 2만5000명을 중증 부작용에서 구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사이퍼롬, 녹십자지놈, 메디젠휴먼케어, 랩지노믹스, 디엔에이링크 등 유전체 분석 기업들이 의료기관을 통해 약물 유전체 검사를 서비스하고 있다.
강씨 부부처럼 수면 내시경을 받을 경우 프로포폴이나 미다졸람 등을 투여하는데, 병원에서는 키와 몸무게, 음주 정도를 물어보고 일반적으로 놓는 평균치를 주사한다. 그러나 특정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을 경우 약물 흡수도가 떨어지거나, 다른 유전자 돌연변이에 따라 반대로 약물 흡수도가 좋은 사람도 있다. 돌연변이가 없으면 평균 사용량을 쓰면 되지만, 유전자 돌연변이 여부에 따라 약물을 조금 적게 주사하거나 많이 주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일부 병원에서 약물반응 5종(프로포폴, 항고혈압제, 와파린 클로피도그렐 등 항혈소판제제, 당뇨약, 항응고제제) 유전자 검사를 15만원 선에서 받을 수 있다
신동직 메디젠휴먼케어 대표는 "서비스 초기 단계라 통계치를 낼 만큼 케이스가 많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프로포폴을 많이 투여하는 것보다 평균치나 적게 투여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약물이 부족해서 중간에 깨는 사람보다 늦게 깨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검사를 잘 활용하면 약물 오남용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프로포폴과 비슷하게 사용되는 마취제인 미다졸람과 케타민도 서비스하기 위해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오씨 사례처럼 자신에게 맞는 치료제를 찾는 데 걸리는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녹십자지놈은 일반 약물 유전체검사와 '내과용 약물유전체검사'를 서비스하고 있다.
내과에서 자주 사용하는 와파린, 클로피도그렐, 아토르바스타틴, 로살탄, 암로디핀, 메트포민, 세레콕시브 등이 대상이다. 한국인이 잘 걸리는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 순환기질환, 염증질환, 소화기질환 등에 많이 사용되는 약물 34종을 중심으로 검사를 구성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최종문 녹십자지놈 전문의는 "약물유전체검사를 통해 환자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약물을 처방할 수 있게 되면 약물 부작용이나 오남용을 줄일 수 있다"며 "연간 2만4000건, 약 1000억원에 달하는 약물부작용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약을 개발해 시장에 출시하려면 효과와 안전성 등을 검증하는 까다로운 임상과정을 거쳐야 한다. 많은 환자들에게 효과적이고 안전하다는 인정을 받아 출시되지만, 일부 환자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의사가 숙련된 경험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처방하고 추적 관찰해서 효과가 적거나 부작용이 우려되면 약을 바꾸는데, 환자별로 다른 예기치 못한 부작용은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약물 유전체학이 발달하면서 의사가 참고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도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김주한 교수는 한국인의 유전자변이를 밝혀 소아백혈병 환자의 부작용을 줄이도록 치료 가이드를 바꾸려고 연구 중이다.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연구팀은 소아백혈병 환자의 유전체를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으로 전수조사했다. 전체 환자의 10%가 부작용을 못 견뎌 치료를 포기했는데, 한국인에게는 공식 치료 가이드라인에서 언급하는 유전자 변이가 아닌 같은 기능을 하는 다른 유전자 변이가 있다는 점을 연구팀이 밝혀냈다.
전문가들은 약물유전체학을 유전체 분석 산업을 키울 '키 플레이어'로 꼽는다. '나에게 맞는 약을 찾는다'는 목표가 유전체 분석 검사를 받을 강력한 동기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약물과 돌연변이 유전자와의 상관관계가 밝혀지고 데이터가 쌓이면 신약개발 과정에서도 획기적인 진전이 일어날 수 있을 전망이다.
조은해 녹십자지놈 유전체연구소 소장은 "내과용 약물유전체검사 출시 당시 조사에 따르면 전문의 10명 중 7명이 검사를 활용하겠다고 답했다"면서 "그중 43%가 약물 효과가 부족하거나 부작용이 나타나는 환자 진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하는 등 의사들 반응도 호의적이어서 전망이 밝은 분야"라고 설명했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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