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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일맛 나는 리테일⑤]"위기가 기회"…유통기업, 직원복지 강화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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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 시간 단축·男 육아휴직제 활성화 등 기업문화혁신 사례에 눈길
일각, 새 정부 기조 맞춰 내놓은 '보여주기식 직원끌어안기용' 비판
'첫 발을 뗐다'는 데 의의를 두는 의견도…"선진 근무환경 구축 기대"

아시아경제

출처=게티 이미지


[아시아경제 조호윤 기자]"이유가 어찌 됐든 지지한다." 신세계그룹이 대기업 최초로 내년부터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하자, 업계 안팎의 이목이 모였다. 법정 기준(40시간)보다 근로 시간은 5시간 단축되지만, 임금은 하락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부 근로자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5년차 직장인 장혜수씨는 "임금 변동 없는 근로시간 단축제는 혁신"이라고 평하며, "신세계를 시작으로 국내 대기업 근무 여건이 개선되길 희망한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유통 기업들이 앞다퉈 직원 복지 수준을 높이고 있다. 일과 가정이 양립(워크앤라이프밸런스·워라밸) 가능하도록 근무여건을 개선해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일각에서는 '보여주기식 직원끌어안기'라고 지적하며 실행 가능성에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선진 기업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첫 발을 뗐다'는 데 큰 의미를 두는 의견도 많다.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유통 대기업들이 새 정부 기조에 발맞추기 위해 조직을 재정비하고, 제도를 보완하고 있다. 근로자들의 열악한 근무여건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기업문화혁신 방안을 속속 내놓고 있는 것. 기업들은 '쉴 때는 쉬고 일할 때는 일하자'라는 취지로 근로환경을 개선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근무 여건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실제 우리나라 임금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2124시간으로, 이는 전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1위는 2228시간을 기록한 멕시코가 이름을 올렸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100개 기업 근로자 4만951명을 대상으로 내놓은 '한국기업의 조직 건강도와 기업문화'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은 주 5일 중 3일 이상 야근하는 근로자는 전체 43.1% 비중을 차지했다. 평균 야근 일수는 2.3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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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근로시간에 따른 부작용도 나왔다. 대표적으로 저출산 문제와 청년 실업 문제다. 가정, 삶과 일의 부조화 탓이다. 전문가들은 근로 시간을 단축해야 저출산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고, 청년층을 위한 일자리도 마련될 수 있다고 봤다.

기업들도 동참하는 분위기다. 신세계그룹은 대기업 최초로 주 35시간 근로제를 도입한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것. 임금 변동은 없다. 근로 시간이 단축돼도 기존 임금을 그대로 유지하며, 매년 시행되는 임금인상도 계속된다.

업계에서 '파격'이라고 표현하는 '35시간 근무제'는 임직원들의 워라밸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됐다. 장시간 과로, 과로 사회로 묘사되는 대한민국 근로문화를 혁신해 생산성을 높인다는 게 회사측 복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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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도 임직원들의 워라밸을 맞춰주기 위해 노력 중이다. 특히 대기업 최초로 도입한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제도'는 벌써부터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났다. 지난달 말 기준 육아휴직을 사용한 롯데그룹 내 남성 직원들은 1050명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시행 첫 해인 지난해 대비 6배 이상 확대된 규모다. 롯데그룹은 한국의 연간 남성 육아휴직자가 1만명이라는 수치를 감안하면, 국내 육아휴직자 10명 중 1명은 롯데 직원이라고 설명했다.

향후에도 롯데는 직장 내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일과 가정의 양립 활성화에 힘을 쏟을 방침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달 열리는 여성 리더십 행사인 'WOW 포럼'에 참석해 1000번째 남성 육아휴직자를 직접 격려할 방침이다.

CJ도 남성 출산휴가를 확대 시행하고 있으며, 퇴근 후 카톡으로 업무지시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임신한 임직원을 대상으로 2시간 단축 근무 등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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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최근 속속 나타나는 기업문화혁신안들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전무후무한 근무 조건에 대해 "실현 가능하지 않다"고 평가하면서, "새 정부 기조에 발 맞추기 위한 보여주기식 직원끌어안기"라고 지적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직원 복지 강화와 같은 선심성 정책은 기업이 위기 상황일 때 나타났다, 상황이 나아지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며 "실제 롯데의 경우 경영권 분쟁, CJ의 경우 총수 구속 등 그룹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그룹의 위기를 기회로 해석하는 의견도 있다. 이들은 위기 관리를 위한 '형식적 기업문화개선'이라는 비판에도, '첫 발을 뗐다'는 데 대해 의의를 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실행 가능성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데 대해 큰 의미가 있다"며 "선진 근무 환경을 구축하는 첫 단계인 셈"이라고 했다.

조호윤 기자 hod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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