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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디즈니 회장이 21세기폭스를 품으려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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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로버트 아이거 월트디즈니 CEO /사진=연합뉴스


[글로벌 CEO열전-40] 콘텐츠 공룡 월트디즈니와 21세기 폭스의 결합이 임박했다. 두 회사는 이르면 이번주 안에 인수·합병(M&A) 계약을 최종 타결한다. 예상 금액은 600억~700억달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돈으로 70조원 안팎의 거액이다. 계약이 완료되면 디즈니는 폭스의 뉴스와 스포츠 분야를 빼고 영화 스튜디오, TV 프로덕션 사업부, TV 콘텐츠 등 핵심 자산을 품는다. 그렇지 않아도 거대한 몸집이 두 배 가까이 커지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영화·TV 콘텐츠 시장의 장악력은 훨씬 커질 것으로 보인다.

디즈니와 폭스의 긴박했던 인수·합병 협상의 주연은 단연 로버트 아이거 디즈니 회장이다. 그는 까다로운 상대인 제임스 머독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머독은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아들로 21세기 폭스의 최고경영자다. 두 회사의 콘텐츠 자산을 합쳐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할 필요성은 분명하다. 현 상태로는 신흥 강자들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맹주이자 영화 '옥자'와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제작사이기도 한 넷플릭스는 디즈니 왕국을 위협하는 선두 주자다. 아이거 회장은 지난 8월 디즈니의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를 강화하며 넷플릭스 견제에 나섰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넷플릭스가 콘텐츠 투자를 계속 늘리는 동시에 디즈니 계열사인 ABC스튜디오의 스타 프로듀서를 영입하는 등 인재를 보강하며 디즈니 왕국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디즈니 위기가 넷플릭스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와 TV 드라마를 보는 소비자 행태가 바뀐 것이 결정적이다. 예전에는 유료 채널을 통해 영화와 드라마를 즐겼지만 스마트폰 보급으로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 스트리밍 서비스 비중이 갈수록 커져 디즈니 경영을 압박했다. 2005년 디즈니 사령탑에 올랐던 아이거 회장은 이런 시장의 변화를 생생하게 지켜봤고 하루빨리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천하의 디즈니라 해도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가 미국의 한 언론과 인터뷰하며 털어놓은 다음 말에서 이런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비즈니스로 미디어 산업이 바뀌고 있다. 이런 흐름을 주도하기 위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확대하려고 한다. 기업이 발전하려면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구태의연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기업인으로서 그의 경력은 월트디즈니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처음부터 디즈니에 입사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거 회장은 '디즈니맨'으로 살았다. 대학을 졸업한 뒤 첫 직장은 ABC방송국이었다. 그러나 1996년 방송국이 디즈니에 합병되면서 자연스럽게 디즈니를 위해 일하게 됐다. 그는 1999년 월트디즈니 인터내셔널 사장에 올랐고, 이듬해 최고운영책임자로 발탁됐다.

급변하는 콘텐츠 시장에 맞춰 디즈니의 변신을 이끌어야 하는 것이 최고경영자 취임 이후 아이거 회장을 옥죄는 최대 과제였다. 변하지 않으면 침체의 늪에 점점 더 깊게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선택한 길은 덩치를 키우는 것이었다. 더 많은 콘텐츠를 보유하면 스스로 시장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거 회장이 인수·합병에 적극적이었던 이유다.

그의 행동은 빨랐다. 취임 직후인 2006년 픽사를 74억달러에 사들였고 2009년에는 마블 엔터테인먼트를 40억달러에 인수했다. 픽사와 마블을 품으면서 디즈니 콘텐츠 경쟁력은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은 아이거 회장은 영화 제작사인 루카스필름을 40억6000만달러에 인수했는데 이것이 대박을 쳤다. 루카스필름의 스타워즈 시리즈로 수 십억 달러를 벌었다. '미녀와 야수' '겨울 왕국' 등 디즈니의 대형 흥행 뒤에는 아이거 회장이 사들인 대형 제작사들이 버티고 있었다. 최근에는 10억달러가 넘는 돈을 주고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구축 기술을 가진 BAM테크를 인수해 주목받았다.

그의 재임 기간 디즈니 시장가치는 10배 이상 뛰었다. 이런 실적은 세 번 연임으로 이어졌다. 외신들은 이번에 폭스 인수를 끝내면 네 번째 연임도 가능하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폭스가 보유하고 있는 엑스맨과 판타스틱4, 데드풀, 아바타, 심슨가족, 혹성탈출 등 인기 콘텐츠들이 디즈니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려면 그의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디즈니 내부에서도 다른 경영자로 교체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분위기다.

아이거 회장은 넷플릭스 등 신흥 강자들의 거센 도전을 막강한 콘텐츠로 막아내고 디즈니 왕국의 또 다른 전성기를 이끌 수 있을까?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폭스 인수가 중요한 갈림길이 될 것만은 분명하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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