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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특파원 리포트] '달러 독재' 강화하는 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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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트럼프 미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후 뉴욕타임스 등 미국 진보 언론들은 '오히려 중국의 아시아 패권이 강화됐다'는 비판 기사를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시진핑 주석의 '세계화' 메시지에 압도당했고, 세계의 패권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정치적 구호를 덜어내고 현실만 보면 정반대 상황이 펼쳐진다. 한 나라가 지닌 힘을 재는 가장 현실적인 잣대는 돈이다. 미 달러의 위상이 현재 미국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금융 위기 후 10년, 킹 달러가 세계의 독재자가 되다'란 기사에서 "미국발 금융 위기의 최대 아이러니는 달러화의 위상이 과거 어느 때보다 공고해졌다는 것"이라고 했다. 세계 금융 시스템을 붕괴 직전까지 몰아간 사고를 친 건 미국인데 오히려 유로화와 위안화 등 잠재적 경쟁자들이 나가떨어지는 결과가 됐다는 것이다.

WSJ은 현재 일본과 독일·프랑스·영국의 상업은행들이 자국 통화로 발행한 채권보다 미 달러화 표시 채권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올해 들어 전 세계에서 자국 통화로 발행한 채권보다 역외에서 달러로 발행하는 채권의 액수가 더 많아졌고,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의 달러 보유액 감소도 멈췄다. 유럽은 정치적 위기로 비틀거렸고, 외환 위기를 우려한 중국이 오히려 자본 통제를 강화하면서 국제적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 자본시장이 '결국 믿을 건 미국뿐'이란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가 이 같은 '달러 독재' 시대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상원은 지난 2일(현지 시각) 법인세를 현행 35%에서 20%로 내리는 파격적인 감세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우리나라(22%)를 비롯한 대부분의 신흥국보다 낮은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역외에 나가 있는 투자금 4조달러(약 4400조원)가 미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미 달러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무역 장벽도 높이고 있다. 달러의 대체재가 없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를 빨아들일 정책만 쓰고 있는 것이다. WSJ은 전 세계적인 달러 부족 가능성도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 호언대로 4조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미국으로 돌아갈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이번 감세안이 미국의 재정 적자만 키워 미국 연방정부 재정 파탄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위안화 없이는 버틸 수 있어도 미 달러가 없으면 나라도 부도난다는 사실이다. 1971년 미국이 금본위제를 폐지한 뒤 세계 금융시장이 혼돈에 빠졌을 때 존 코넬리 당시 재무장관은 "달러는 우리 돈이지만, (혼돈은) 당신들 문제"라며 냉정히 돌아섰다. 외교에선 균형을 꿈꿔볼 수라도 있지만 자본시장에선 달러 독재만 있다. 시진핑의 세계화 구호가 아니라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이유다.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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