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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이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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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가

뭐락카노, 저 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밧줄은 삭아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박목월(1916~1978)('박목월시전집', 민음사, 2003)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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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동아밧줄'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이 되었다. 그 바람에 '니 음성'은 저승으로 불려가고 '나의 목소리'는 이승으로 날린다. 왁살스러운 경상도 사투리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는 다 펼치지 못한 정(情)을 향한 애타는 물음이다. '오냐, 오냐, 오냐'는 이승의 인연을 저승의 인연으로 잇대려는 간절한 응답이고 다짐이다. '그를 꿈에서 만났다./ 턱이 긴 얼굴이 나를 돌아보고/ 형(兄)님!/ 불렀다./ 오오냐. 나는 전신(全身)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하관'). 피안의 강가에서 나누는 이별가는 '뭐락카노'와 '오냐'의 사이를 오간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이고 '자연의 한 조각'이다. 그러니 이 별과 이별할 때는 '하직(下直)'을 고하지 말 일이다.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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