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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꺼져가는 사랑의 연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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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이영학 사건으로 기부 3년만에 3분의 1 토막

가격마저 19.6%나 올라

"기부 성수기였던 연말이 비수기처럼 위축됐다. 올해 겨울을 어떻게 지내야 할지 막막하다."

지난 6일 오후 쪽방촌이 밀집된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서 만난 연탄은행 직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두웠다. 약 10㎡ 크기의 창고 안에서 연탄을 쌓던 직원들은 "이번 주에 이만큼을 나눠주고 나면 당장 다음 주부터 대책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연탄은행은 매년 겨울 각종 단체나 개인으로부터 후원받은 기부금으로 연탄을 구입해 독거 노인 등 소외 계층에 나눠주는 일을 해왔다.

조선일보

지난 7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의 한 주민이 한쪽에 쌓인 몇 장 안 되는 연탄을 근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최순실 사태와 이영학 사건 등으로 기부 인심은 얼어붙은 데다 정부가 지난달 연탄값을 올리면서 불우이웃의 겨울나기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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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성수기인 연말이 돌아왔지만 연탄 후원의 손길은 갈수록 줄고 있다. 서울연탄은행은 2014년 609만2718장, 2015년 521만90장의 연탄을 취약 계층에 전달했다. 그러나 2016년 305만7225장으로 반 토막 나더니 올해 1~11월까지 전달된 연탄은 171만6331장에 불과했다.

전체 기부의 80%를 차지하던 기업 기부가 최순실 파문과 청탁금지법 시행을 계기로 크게 줄었다. 7년 연속 부산연탄은행에 2000만~3000만원을 기부하던 한 기업은 올해부터 지원을 중단했다. 부산연탄은행 관계자는 "최순실 사태로 후원을 중단한다는 기업들을 일일이 붙잡고 사정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했다. 개인 기부도 얼어붙었다. 전주연탄은행 관계자는 "이영학 사건 발생 직후 후원 개인 600여명 중 20여명이 지원을 끊었다"고 했다.

이 와중에 정부의 갑작스러운 연탄값 인상이 연탄 창고를 꽁꽁 얼어붙게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28일 연탄 가격을 19.6% 인상한다고 밝혔다. 기부 예산을 미리 세워둔 기업은 갑작스러운 가격 상승으로 인해 공급할 연탄 개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 전국 평균 550원이던 연탄 1장은 650원 정도로 상승했다.

정부는 가격 인상과 함께 지원책을 내놨으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올라간 가격만큼 전국 약 7만4000가구에 지원하는 연탄 쿠폰 금액을 23만5000원에서 31만3000원으로 33.2%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연탄은행이 파악한 연탄 필요 가구는 13만464가구다. 약 5만6000가구가 정책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연탄은행 측은 독거 노인들이 직접 쓴 편지를 청와대에 보낼 계획이다. 허기복 연탄은행 대표는 "소외 계층에 있어 연탄의 존재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인데 정부의 일방적인 연탄값 인상은 아쉽다"며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대책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철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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