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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자연에는 직선 없어"… 디자이너들의 代父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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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산업디자이너 루이지 콜라니

8일 DDP서 열린 첫 개인전 통해 곡선 이용한 작품 100여점 선보여

자연서 영감얻은 '바이오 디자인'

구순(九旬)을 바라보는 디자이너는 바퀴 달린 의자를 타고 등장했다. 8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막한 '자연을 디자인하다, 루이지 콜라니 특별전' 참석차 방한한 독일 산업 디자이너 루이지 콜라니(89)는 부축받아 기자회견장 단상에 올라설 땐 "맘마 미아!(엄마야!)"라고 했다.

맘 좋은 할아버지처럼 보였던 그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딴 사람이 됐다. 크게 손짓하며 쩌렁쩌렁한 독일어로 말했다. 질문이 겹치면 직접 '교통정리'를 했고, 촬영 중인 사진기자의 카메라를 가리키며 "콜라니 디자인"이라고 했다. 오른손으로 쥐는 부분에 불룩한 그립(grip·손잡이)이 있어 손에 착 감기는 디자인의 원조가 자신의 작품 캐논 'T90' 카메라라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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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루이지 콜라니가 8일 서울 DDP에서 두 팔을 활짝 펼치며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그가 디자인한 스포츠카, 오른쪽은 이날 작품을 설명하면서 직접 그려 보인 스케치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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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지 콜라니는 현대 디자인에 폭넓게 영향을 미친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로 평가받는다. 귀에 꽂는 모양의 소니 헤드폰은 오늘날 이어폰의 원형이 됐다. "자연은 각(角)을 만들지 않으며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발언으로 유명한 그는 곡선을 소재로 볼펜부터 비행기까지 6000여 점을 디자인했다. 디자이너 로스 러브그로브는 그를 "공간과 기능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힌 형태의 선지자"라고 표현했다. 세계적 산업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 역시 그에게서 직접 영향을 받은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한국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는 미래형 스포츠카 T600, 독일 고급 도자기 회사 로젠탈 의뢰로 만든 찻주전자 등 대표작 100여 점과 드로잉 작품들이 나왔다. 콜라니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1970~80년대 작품들이 많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을 주지 않는다. 콜라니는 "평생 작업하면서 (형태와 색채, 기술과 예술 등의) 조화를 추구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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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가구 회사 쿠쉬 의뢰로 만든 소파(위). 오른손으로 쥐는 위치에 그립을 붙인‘T90’카메라. /DDP·캐논


자연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 작업해온 콜라니의 작품 세계는 '바이오디자인(biodesign)'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그는 "너무나도 작은 존재인 인간은 자연을 평가할 수 없으며 자연을 깊이 탐구할 뿐"이라고 했다. 자연의 형태를 단순 모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콜라니는 "자연에서 나오는 좋은 소재를 쓰고, 그 가격이 지불할 수 있는 정도여야 한다는 점도 바이오디자인의 요건"이라고 말했다.

전시 장소인 DDP는 콜라니처럼 비정형 곡선을 조형 언어로 삼았던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했다. 곡선에 천착해온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만난 셈. 콜라니는 "하디드의 초기 디자인은 각이 살아 있었지만 점차 아름다운 곡선으로 거듭났다"며 "전시된 작품들에서 디자인의 미래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스위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콜라니는 부모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완성된 장난감을 선물로 주신 적이 없어요. 대신 칼과 톱, 나무토막을 줬기 때문에 늘 그걸로 뭘 만들지 생각해야 했죠."

베를린예술대학에서 조형과 회화를 공부한 콜라니는 프랑스로 이주해 소르본대학에서 공기역학을 전공했다. 예술적 감각과 공학적 전문성을 모두 갖춘 드문 디자이너다. 첫 직장이 미국 항공기 제조사 더글러스 에어크래프트였다. 그는 지금도 "최대 화두는 '속도'"라며 "어떻게 하면 자동차가 더 빨리 달릴지, 비행기가 더 빠르게 날지 늘 생각한다"고 했다.

콜라니는 흰옷을 즐겨 입는다. 이날도 스웨터·바지는 물론 구두와 양말까지 흰색이었다. 역시 속도와 관련이 있다. "우리가 아주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면 모든 게 하얗게 보이지 않을까요?" 내년 3월 25일까지. (02)2153-0690



[채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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