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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이코노 서가(書架)] 콘셉트 잡을 땐… 있는 모습 그대로, 날카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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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예전에 프로야구에서 '패전 처리조'라는 말을 많이 썼다. 큰 점수 차이로 경기를 지고 있을 때 내보내는 투수를 말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투수가 패전 처리조에서 뛰기를 원하겠는가? 그래서 어느 야구팀은 '우리는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 추격한다'는 의미를 부여해서 패전 처리조를 '추격조'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고 한다. 이름만 바꿨을 뿐인데.

광고기획자인 저자 김동욱씨는 자신의 일이 바로 이런 것이라 말한다. 주어진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는 일, 다시 말해 콘셉트를 잡는 일이다.

'결국, 컨셉: 마음을 흔드는 것들의 비밀'은 저자 자신의 광고 제작 경험이 담겨 있어 재밌는 책이다. 피키캐스트란 앱은 모바일 뉴스의 원조 격이다. 모바일 환경과 10~20대 정서에 맞게 뉴스를 재가공해 제공한다. 이 회사가 "천만 명이 다운로드할 광고를 만들어 달라"고 저자의 팀에 의뢰했다.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며 낸 콘셉트 중 최종 채택된 것은 '우주의 얕은 지식, 피키캐스트'였다. 광고주는 처음엔 난색을 표했다. 어떤 콘텐츠 생산자가 자신이 만드는 콘텐츠를 "얕다"고 하고 싶겠는가. 그래서 이렇게 설득했다. "제가 보기엔 여기 모든 것들이 그렇게 깊이 있어 보이지 않아요. 한마디로 얕죠. 그런데 얕은 걸 어쩌게요? 얕은 걸 얕다고 자기 입으로 먼저 말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멋진 것 아닌가요?" 광고는 그 콘셉트로 제작됐고 론칭 한 달 만에 천만 다운로드를 달성했다. 결국 콘셉트란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저자가 신입사원을 뽑을 때였다. 영혼 없는 자기소개서들을 넘기던 차에 눈길을 사로잡은 단 하나가 있었다. "대학 졸업할 때까지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24명입니다." 그 지원자는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모든 사람이 천편일률적으로 자기 자랑을 나열할 때,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전략으로 눈에 띌 수 있었던 것이다.

콘셉트는 또 송곳처럼 날카로워야 한다. SPA(제조·유통일괄형) 브랜드의 1세대 격인 아메리칸어패럴은 주된 타깃인 10대의 마음을 강력하게 사로잡을 수 있는 콘셉트가 필요했다. '10대에게 가장 어울리는 옷' 따위의 평범한 것으로는 부족했다. 그들은 '엄마들이 싫어하는 옷, 아메리칸어패럴'이란 콘셉트를 만들어 반항기 가득한 10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승자독식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약자도 자신만의 콘셉트가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 광고뿐 아니라 제품 기획, 브랜딩을 할 때도 머리를 말랑말랑하게 해줄 책이다.

이지훈 세종대 교수·혼창통아카데미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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