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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사설] “외환위기보다 더 큰 고통 올 수 있다”는 이헌재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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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8일 “20년 전 외환위기 때보다 더 엄혹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 경제가 독립적인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전 부총리는 김대중정부 때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으로서 외환위기를 당한 우리 경제의 구조조정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의 우려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온 나라가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는 경제현실만 봐도 그렇다. ‘부채 공화국’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올 상반기에 주요 43개국 중 중국 다음으로 빨랐다. 140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는 위기의 진원으로 떠오를 여지가 크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나랏빚이다. 사상 최대 팽창 예산을 꾸린 결과 국가채무는 내년 말 722조원대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해 말 627조원과 비교하면 2년 만에 100조원 가까이 불어난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이런 상황에서는 빚 관리라도 제대로 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난달 국회에 제출된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재정적자는 내년 28조원을 시작으로 매년 불어난다. 2021년에는 한 해에만 41조원의 적자를 내겠다고 했다. 복지 강화, 공무원 증원을 위해 적자 재정이 일상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빚더미로 위기에 대응할 수는 없다. 1997년 외환위기 때에는 탄탄한 재정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정부도, 가계도 모두 빚수렁에 빠져 있다. 이 전 부총리가 경제의 독립적 지위 유지를 걱정하는 이유다. 이 전 부총리는 “공동체를 지키겠다는 국민의 마음이 무너지고 있다”고도 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달 설문조사한 결과 ‘위기 재발 시 고통분담에 동참할 것으로 보느냐’는 물음에 37.8%가 ‘그렇지 않다’고 답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이 전 부총리는 “위기에 빠진 사회일수록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한다”며 “위기일수록 다른 생각을 지닌 이들과 토론하고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현실은 딴판이다. 공동체 정신은 실종되고 포퓰리즘의 망령이 활개치고 있다. 규제·노동 개혁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둑이 무너진 후에는 후회해야 소용없다. 청와대와 정치권은 이 전 부총리의 고언을 깊이 새겨듣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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