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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의 속사정]①"'인간시장' 난민 3만명 받겠다"…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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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에 관심…1994년 르완다 대학살 당시 100만 명 희생 아픈 역사

아시아경제

난민선의 모습(EPA=연합뉴스 자료사진)


동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르완다가 최근 리비아 무장 단체에 억류돼 '인간시장'으로 내몰린 아프리카 난민 3만 명을 받겠다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루이스 무시키와보 르완다 외무장관은 이날 "우리는 인간들이 가축처럼 혹사를 당하고 매매되는 상황에 침묵할 수 없다"며 아프리카 난민을 최대 3만 명까지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무시키와보 장관은 "르완다는 작지만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르완다의 면적은 2만6338㎢. 콩고민주공화국과 우간다, 탄자니아 사이에 끼어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작은 나라에 속한다. 이런 르완다가 난민들을 받아들이겠다고 한 이유는 그들의 아픈 역사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무시키와보 장관은 난민 수용의 이유로 정치적 철학과 역사를 언급했다.

르완다에서는 1994년 1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대학살이 있었다. 후투족 출신 대통령이 전용기 격추로 사망하자 후투족들이 투치족을 대량 학살한 것이다. 후투족과 투치족의 갈등은 벨기에의 식민 지배를 받을 때 생긴 것이었다. 벨기에는 통치의 편의를 위해 이미 구분이 없어진 종족을 다시 분리하고 소수의 투치족이 다수의 후투족을 통제하게 했다.

석 달 사이에 100만 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빚어졌지만 주변국은 물론 국제사회는 도움을 주지 않았다. 당시 르완다는 '인간시장'의 아프리카 난민처럼 철저히 고립돼 있었다. 르완다 대학살은 그해 7월 투치족의 '르완다 애국전선'이 수도 키갈리를 점령하면서 끝났다.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UNHCR) 최고대표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목격한 가장 극적인 고통과 불행한 죽음은 르완다 대학살"이라고 했다.

대학살 이후 23년이 지났지만 현재 르완다의 정치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르완다 애국전선을 이끈 폴 카가메 대통령은 지난 8월 98%가 넘는 득표율로 3선에 성공했다. 대학살을 주도한 후투족을 축출하고 2000년 권좌에 오른 이후 17년째 집권하고 있는데 임기를 7년 더 연장한 것이다. 이미 대선에서 승리하면 5년 임기의 대권에 두 차례 더 도전할 수 있도록 헌법도 개정해 그의 집권은 최장 17년간 계속될 수도 있다. 오는 2034년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최근 37년 만에 불명예 퇴진한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전 대통령의 통치 기간에 필적한다.

이 때문에 그가 대학살 이후 갈라진 르완다를 통합해 상처를 치유하고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는 평가의 이면에는 그동안 반정부 인사와 언론을 탄압하는 독재 정치를 해 왔다는 비난이 상존한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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