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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외환위기 20년, 끝나지 않은 고통](상)외환위기 책임자들 정치권으로, 재계로, 경제관료로…국민 고통과는 괴리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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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결정 책임자들은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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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는 경제 분야의 고위 관료들에게도 위기였다. 그러나 이들의 위기는 잠시에 그쳤다. 많은 국민들이 실직으로 길고 긴 고통의 터널을 지나야 했던 것과 대비된다.

1997년 11월19일 당시 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과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은 정책 실패를 이유로 경질됐다. 강 전 부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을 불과 열흘 앞둔 시점에도 “내 재임 기간에는 창피해서 IMF에 못 간다”고 버텼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전 부총리는 동부그룹 금융보험부문 회장을 거친 뒤 현재는 농심의 사외이사로 있다. 김 전 수석은 2015년 한국무역협회 회장에 오른 뒤 지난달 사의를 표하고 물러났다.

임창열 전 부총리는 경질된 강 전 부총리를 대신해 IMF에 구제금융을 공식 요청하고 고강도의 경제 구조조정을 받아들였다. 김영삼 정부의 마지막 경제부총리였지만 ‘소방수’ 역할을 한 공으로 이듬해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가 됐다. 그는 2014년 9월 킨텍스 대표이사로 취임한 후 지난 8월 3년 연임에 성공했다.외환위기의 원인이 때 이른 자본시장 개방에 있다고 한다면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도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으로 있으면서 무리한 환율 방어정책을 펼치다 외환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공직에서 밀려난 뒤 한직을 맴돌다 이명박 캠프에 합류해 다시금 비상했다.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이명박 정부의 첫 경제수장을 맡았고 다시 금융위기 극복을 명목으로 고환율 정책을 추진했다. 수출대기업을 위한 정책이지 서민경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현재 산업은행장 재직 당시 직권남용 등 혐의로 수감 중이다. 외환위기 당시 윤증현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은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외환위기 대책을 주도했던 인물 중 하나다. 그는 2009년 2월 기획재정부 장관에 임명되기 전 인사청문회에서 외환위기 책임론과 관련해 “고위 관료의 한 사람으로서 경제위기로 인해 전 국민이 고통을 받은 데 대해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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