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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 (일)

[전문가의 '뉴스 저격'] 노동생산성 개선 없이 근로시간만 단축 땐, 기업 부담 7조600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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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뜨거운 감자' 근로시간 단축, 與野 합의 못하면 행정해석 변경하겠다는데…

한국 연간 2069시간 일해… OECD 3위, 獨보다 700시간 더 많지만 생산성 절반

여야·노사 모두 큰 틀에선 동의하지만

기업 규모별 유예 기간 얼마나 둘지, 휴일근로수당 어떻게 할지 놓고 이견초과

근로 필요한 中企 사업체엔 타격… 특례업종 조정, 구체적 실태조사 절실

조선일보

김승택·한국노동연구원 원장직무대행


최근 근로시간 단축 논쟁이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대 68시간인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기 위해 "행정 해석을 바로잡는 방안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1주간의 근로시간은 40시간, 연장 근로는 주당 12시간을 넘지 못하게 돼 있다. 이 법에 규정된 1주를 정부는 지금까지 '주말을 제외한 5일'로 보고, 토·일 근무는 주당 최대 근로시간(40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행정 해석을 유지해왔다. 이에 따라 토요일과 일요일 각 8시간 근무를 포함해 주당 근로시간이 68시간(40+12+16)이어도 근로기준법 위반이 아닌 것으로 봤다. 이런 행정 해석의 논란을 막기 위해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1주는 휴일을 포함한 7일을 말한다'는 규정을 신설하는 것을 비롯해 여야 간 입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다만 기업 규모별 적용 유예 기간 등에 대해 여야 간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아 아직 법이 개정되지 않은 상태다. 대통령 발언은 법 개정이 안 되면 기존 행정 해석을 바로잡는 방법을 통해서라도 근로시간을 단축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기존 행정 해석을 바로잡는 시점에 곧바로 근로시간 단축이 전면 적용돼 산업 현장의 큰 혼란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2004년에 법정 근로시간이 주 40시간으로 단축된 이후 평균 근로시간은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지만, 장시간 근로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인 상황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2069시간으로 멕시코(2255시간)와 코스타리카(2212시간)에 이어 연간 근로시간이 가장 많은 국가로 꼽힌다. OECD 평균(1763시간)보다 306시간이 많은 것이다.

이런 장시간 근로 문제를 풀고자 2010년 노사정위 근로시간단축특위가 '2020년까지 1800시간대로 연간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자'는 노사정 합의를 끌어냈고, 2015년 9·15 노사정 합의문에는 '1주일은 7일로 해 휴일 근로시간을 연장 근로시간에 포함하고, 주당 근로시간은 52시간(기준 근로시간 40시간+연장 근로시간 12시간)으로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국회의 법 개정이 지연되자 지난 5월 대통령 선거에서 근로시간 단축은 주요 정당의 공통적 공약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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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근로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방향에 대해선 대다수가 동의하면서도 아직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장시간 근로가 필요한 사업체와 종사자들이 직면한 현실이 복잡하다는 점이다. 현재 추진 중인 근로시간 단축은 대기업이나 공공 부문보다는 민간의 중소기업 이하 사업체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이들이 처한 상황이 달라 다양한 보완 정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보충 인력을 구할 수 없어 기존 인력이 초과 근로를 할 수밖에 없는 경우는 인력 공급을 촉진할 수 있는 외국인 인력 활용, 직업 알선과 교육 훈련을 동반하는 고용 서비스 같은 보완 정책이 필요하다. 고용을 늘리면 노동 비용도 늘어 사업을 유지하기가 힘든 사업체는 단기적으로는 늘어난 노동 비용을 상쇄할 수 있도록 고용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근로자 생산성 향상을 이끄는 지원책 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교대제의 합리적 개편과 유연 근로시간 제도 도입 등 노동 비용 상승을 완화하는 보완 정책 추진이 가능하지만, 사업체의 영세성이 근로시간 단축을 가로막는 주원인이라면 고용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한편 근로시간 단축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특례 업종 범위를 반드시 조정해야 한다. 근로시간 특례 업종은 사용자가 근로자 대표와 서면으로 합의하면 주당 12시간을 넘는 연장 근로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운수업, 물품 판매 및 보관업, 금융·보험업, 통신업, 광고업 등 현행 26가지 특례 업종을 10가지로 줄이는 방안이 2015년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된 바 있고, 20대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법령 개정을 논의 중이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일자리 정책 5년 구상에서도 광고업·금융보험업 등 16개 업종을 특례에서 제외하고, 특례 업종에 대해서도 주 60시간 상한을 두겠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이와 함께 5인 미만 사업장 종사자에게 법정 근로시간이 적용되지 않는 문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런 소규모 기업은 근로시간 관리 감독이 어렵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연장 근로 제한, 연장·야간·휴일 근로에 대한 가산 임금 지급, 연차 휴가 등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런 문제를 풀려면 근로자의 근로시간과 임금 수준에 대한 실태 조사와 통계 축적, 더 구체적으로는 감시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현행 통계 조사 방식은 사업체의 평균적 수치에 관한 조사가 대부분이기에, 앞으로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에 적절히 대응하려면 근로시간과 임금 수준에 관한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다.





[김승택·한국노동연구원 원장직무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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