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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NH농협 "범죄국가 연루없어"…韓 금융권, 대응책 마련 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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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한국계銀 벌금 쓰나미

'월가 저승사자'로 통하는 뉴욕 금융감독청(DFS)의 벌금 폭탄이 한국계 은행을 조준하고 있다. 한국계 은행 중 벌금을 받게 될 첫 사례는 NH농협은행 뉴욕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DFS의 화살은 우리·신한·기업 등 미국에 진출한 다른 한국계 은행으로도 향하고 있어 갈수록 파장이 확산될 수 있다.

한국계 은행 뉴욕지점은 인력이 평균 20~30명에 불과하고 연간 수익이 50억~100억원으로 영세한 수준이다. 하지만 미국 금융당국은 자금세탁방지 문제를 하나의 뉴욕지점이 아닌 한국에 있는 본점 차원의 이슈로 끌고 가려는 의중을 보이고 있어 이 문제가 국내 은행산업으로까지 확산될 조짐이다.

월가 금융권 관계자는 "미국 규정을 잘 몰라서 위반했다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분위기"라면서 "깜짝 놀랄 정도의 징벌적 벌금을 때려 은행 본점이 자금세탁방지 등의 전문성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게 만들려는 게 뉴욕 금융감독청의 의도"라고 해석했다. 일종의 충격요법이다. 현 DFS의 수장은 뉴욕주 검사 출신인 마리아 불로다. 따라서 뉴욕지점의 임기응변식 대응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으며 본점 차원의 전사적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단순히 뉴욕지점의 해당 인력을 보강하고 외부 컨설팅을 받는 정도로는 안 되고 본점부터 국제적 수준의 컴플라이언스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상당수 한국계 은행의 최고경영진이나 본점 내부통제부서 담당자들은 미국 금융당국의 서슬 퍼런 제재 기류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금융당국은 '9·11 테러' 발생 이후 강도 높은 자금세탁방지(AML) 의무를 금융기관들에 부여했다. 테러·범죄 집단에 불법 자금이 흘러 들어가는 금융거래를 봉쇄하기 위해 의심 거래에 대한 고객 확인과 보고 의무를 준수하도록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이란, 북한, 시리아 등 적성국가 기업·개인과의 금융거래도 엄격히 통제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나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와 달리 뉴욕주 산하의 DFS는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과해 월가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들을 몸서리치게 한 전례가 많다. 대표적 사례가 이란, 수단, 쿠바 국적의 기업과 대규모 금융거래를 한 사실을 은폐한 혐의로 프랑스 BNP파리바 뉴욕지점에 2014년 부과된 벌금 89억달러(약 10조원)다.

DFS는 1~2년 전부터 아시아권 은행으로 눈길을 돌렸다. 지난해 11월 중국 3위 은행인 농업은행은 2억1500만달러, 지난해 8월 대만 1위 은행인 메가뱅크는 1억8000만달러의 벌금을 감내해야 했다. 모두 자금세탁방지 위반이 주된 사유다.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에 이르는 초대형 벌금 사례가 빈번했던 점을 감안할 때 농협 뉴욕지점의 벌금 규모도 작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나온다.

농협 뉴욕지점은 이번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계 로펌에 거액의 돈을 주고 컨설팅을 의뢰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만큼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월가 금융권 인사는 "DFS의 제재 흐름이 유럽계에서 아시아계로 넘어왔으며, 한국계 은행의 자금세탁방지 체계가 미흡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계 은행들에 대한 DFS의 연쇄적 벌금 제재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한국계 은행 뉴욕지점들은 제재 폭탄을 피하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뉴욕지점의 컴플라이언스 전문 인력을 1명에서 6명으로 확충했다. 전체 지점 인력(23명)의 4분의 1이나 된다. 국민은행은 외부 컨설팅기관에 컴플라이언스와 관련해 상시 자문하고 있다. 우리은행도 관련 인력을 6명으로 늘렸다.

한 뉴욕지점 관계자는 "컴플라이언스 인력을 더 늘리려고 하지만 많은 금융기관이 경쟁적으로 영입하려는 상황이라 월가에서 실력 있는 전문가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토로했다.

정부는 은행들이 내부 기준을 강화해 외국 지점 지원을 강화하도록 법률 보완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그 외에 미국 정부가 실제 벌금을 부과할 경우 당장 취할 수 있는 마땅한 조치는 없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이르면 내년 1월부터 관련 법이 시행돼 은행들의 자체 감독을 강화하고 미국 지점 은행들도 기준을 더 강화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정보분석원은 올해 초 금융회사 준법감시인 간담회를 통해 '전사적 자금세탁방지 체계 구축 방안'을 논의하고 외국 지점 관리까지 최고경영진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도록 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서울 = 이승윤 기자 /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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