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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현금 일시불로 목돈 받은 뒤 한 달 소득 8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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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 기브다이렉틀리, 케냐서 기본소득 외에 일시불 프로젝트도

현물 대신 목돈 지원받은 주민, 자영업 투자로 소득증가 톡톡

기본소득보다 안정성 낮지만 ‘확실한 단기 목표’ 있을 때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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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도주의 단체 기브다이렉틀리로부터 세번에 걸쳐 11만케냐실링(1100달러)을 지원받은 케냐 서부 한 마을 주민 파멜라(맨 왼쪽)가 지난 10월11일 지원금 일부로 지은 금 채굴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케냐/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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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불 총액 지원을 받은 뒤 한 달 소득이 8배 늘었다.”

케냐 서부의 한 마을에 사는 여섯 가족의 가장 마이클(42)은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세 번에 걸쳐 총 11만케냐실링(약 1100달러·123만원)을 지원받았다. 미국 인도주의 단체 기브다이렉틀리(GD·지디)가 기본소득 파일럿 테스트 이외에 케냐에서 진행하는 현금 이체 프로젝트의 일부다. 매달 적은 금액을 장기적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과 달리, 큰 금액을 일시불 성격으로 두세 번에 나눠서 준다. 마이클은 “일시불로 받은 돈을 사업에 투자해 이제는 전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번다”며 “엄청난 변화”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11일 케냐에서 만난 마이클은 처음 받은 1만케냐실링의 4분의 3을 자녀 고교 학자금으로 썼다고 했다. 그 다음 받은 5만케냐실링의 대부분은 비가 오면 씻겨내려가는 진흙집을 시멘트와 모래로 개조하는 데 썼다. 마지막으로 받은 5만케냐실링은 망하기 직전이었던 철공소 사업에 투자했다. 지원받은 돈으로 장비와 재료를 산 뒤 학교 건물에 필요한 철제 창문을 만들어 납품했다. 지원금을 받기 전 그의 월소득은 많아야 1만~1만5000케냐실링이었고, 수급 첫달인 3월에는 1000케냐실링에 불과했다. 재투자 덕에 사업이 벌떡 일어선 지금은 한 달에 7만~8만케냐실링을 번다. 소득 가운데 월 5만케냐실링은 은행에 저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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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도주의 단체 기브다이렉틀리로부터 세번에 걸쳐 11만케냐실링(1100달러)을 지원받은 케냐 서부 한 마을 주민 마이클이 지난 10월11일 지원금으로 재투자해 성공한 철공소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케냐/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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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일시불 지급과 장기 매달 지급은 수급자들의 의사 결정과 사회적 결과물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선진국에 비해 창업 투자비용과 준비 노력이 훨씬 적다는 특수성을 감안해야 하지만, 일시불 총액 지원을 받은 마을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개인사업 투자’의 신속한 활성화다. 기본소득 파일럿 프로젝트 마을에서는 ‘미래에 사업 투자를 하려고 메리 고 라운드(계모임)에 가입했다’는 주민이 많은 반면, 이 마을에서는 지원받은 목돈을 자영업에 투자해 실제로 경제적 효과를 누리기 시작했다는 주민이 많았다.

남편을 여의고 혼자 자녀 3명을 키우는 파멜라(44)는 일시불 총액으로 금 채굴 사업을 확장했다. 1만케냐실링을 주고 시멘트를 사서 집 앞에 금 채취장을 만들었고, 광부 인건비도 지급했다. 전에는 마을 쇼핑센터에 있는 남의 가게 곁에서 간이 미용실을 운영했으나, 일시불 지원금으로 자기 미용실을 얻었다. 파멜라는 “적은 액수를 (매달) 받으면 큰 액수가 될 때까지 기다리며 돈을 모아야 한다”며 “일시불 총액은 단기간에 이뤄지는 분명한 프로젝트가 있을 때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사업 투자가 아니더라도 평생 만져보기 힘든 목돈을 평소 엄두도 못내던 곳에 쓰는 경우도 많다. 오퀴리(50)는 일시불 총액으로 집안의 염원이었던 두 가지 프로젝트를 실현했다. 우선 4만5300케냐실링을 투자해 5000리터짜리 가정용 물탱크를 샀다. 4만케냐실링으로 집 옆에 이 마을에선 드문 변소도 지었다. 그는 “사람이 덤불에서 대소변을 보면 많은 질병을 퍼트리고 여기저기에 인분이 널브러져 있게 된다”며 “이제 자신 있게 변소를 이용할 수 있고 인간 분뇨에 의한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다”며 흡족해 했다. 옥수수 농사를 짓는 오퀴리가 버는 한달 1600케냐실링과 광부인 남편이 버는 월평균 4000케냐실링으로는 어림 없었던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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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도주의 단체 기브다이렉틀리로부터 세번에 걸쳐 11만케냐실링(1100달러)을 지원받은 케냐 서부 한 마을 주민 오퀴리가 지난 10월11일 지원금 일부로 지은 마을에서 드문 변소 앞에서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다. 케냐/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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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쇼핑센터에서 양장점을 운영하는 이자벨라(57)는 새 재봉틀과 가스 버너를 샀다. 재봉틀은 일터에서 효율을 높여줬고, 가스 버너는 가정에서 수고를 덜어줬다. 맞벌이 주부인 탓에 아궁이에 불을 지펴 요리를 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자벨라는 3500케냐실링을 주고 트랙터도 빌렸다. 건조한 땅에서 옥수수 같은 농작물을 수확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일시불 총액을 받은 뒤 트랙터 때문에 마을이 온통 시끄러울 정도였다”며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그간 트랙터를 필요로 했었는지 설명했다. 이자벨라는 “일시불 총액 수급 이후, 집이 없는 사람이 집이 생겼고 자녀들이 학교에 갈 수 있게 됐고, 장사할 수 있는 컨테이너(가게)를 가지게 됐다”며 “(일시불 총액으로) 마을의 모든 문제가 끝난 건 아니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계획을 세우게 되고, (짚 지붕을 걷고) 철제 지붕을 얹는 큰 변화가 있다”고 말했다. 케냐/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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