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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재무통' 약진하는 재계…경영환경 급변기 '돈흐름 꿰찬 곳간지기'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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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에서 곳간을 관리하던 '재무통'이 잇따라 요직에 등용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에 내정된 이상훈 사장은 ‘살림꾼’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삼성 경영 전반을 꿰차고 있는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이다. 삼성그룹의 옛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 인사지원팀장 출신인 정현호(58) 사장은 이달 초 전자계열사 소그룹 컨트롤타워로 신설된 삼성전자 사업지원TF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미전실 경영진단팀장을 맡았던 박학규 전 부사장도 삼성SDS 최고재무책임자(CFO)로 복귀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 사장과 박 부사장은 지난 2월 미전실 해체와 함께 퇴사한 바 있다. 이 사장과 정 사장은 이재용 부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이른바 ‘JY맨'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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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내정),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장(사장), 박학규 전 미전실 부사장./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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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무라인 부활한 삼성

이상훈 사장과 정현호 사장, 박 부사장은 삼성그룹에서 손꼽는 재무 전문가다. 이 사장은 구조본 재무팀, 전략기획실 전략지원팀에서 전자 관련 계열사 운영 담당 임원으로 일했다. 2012년부터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으로 재무를 총괄했다. 이 사장은 이학수 전 부회장, 김인주 전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최광해 전 전략기획실 부사장 등이 퇴진한 이후 삼성 재무라인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정 사장은 과거 비서실 재무팀, 삼성전자 국제회계그룹장 등을 거쳤고, 박 부사장은 2014년부터 경영지원팀장을 맡아 그룹 체질 개선을 주도했다.

삼성 관계자들은 삼성의 전통적인 재무 라인이 부활했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 이건희 회장이 이끌던 삼성그룹은 삼성전자 경영지원 부문이나 옛 구조조정본부 재무팀 출신 인사를 중용해왔다. 이재용 부회장은 기술 개발과 영업 현장 일선의 '엔지니어'나 '영업통'을 중용했지만 구속 이후 위기 국면이 지속됨에 따라 관리에 무게 중심을 두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추세는 삼성뿐 아니라 SK그룹, 현대차그룹, GS그룹 등 재계 전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는 4차 산업혁명 등 글로벌 경영 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인수합병(M&A), 사업재편 등 재무적 차원에서 그룹 전반의 체질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SK·현대차·GS도 재무 전문가 전진 배치

SK그룹에서도 재무전문가들이 전진 배치됐다. SK그룹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수장을 맡고 있는 조대식 의장(전략위원회 위원장 겸직)은 2007년 최 회장이 직접 영입한 ‘재무통’이다. 그는 SK에서 경영분석실장,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수펙스추구협의회 글로벌성장위원장인 유정준 SK E&S 대표이사는 2003년 SK그룹이 헤지펀드 소버린과 경영권 분쟁을 벌일 때 SK㈜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았다. 지주사인 SK㈜를 이끄는 장동현 사장도 SK텔레콤에서 CFO를 거친 재무통이자 전략기획통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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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조대식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장동현 SK(주) 사장, 유정준 SK E&S사장./조선일보DB



현대차그룹의 지난해 인사에서도 재무라인이 약진했다. 지난해 새로 선임된 5명의 사내이사인 이원희 현대차 사장과 한용빈 현대모비스 재경사업본부장(전무), 김순복 현대글로비스 기획재경본부장(전무), 유종현 현대로템 재경본부장(상무), 김택규 HMC투자증권 재경실장(상무) 등은 모두 재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이원희 사장은 재정팀장, 국제금융팀장, 현대차 미국 법인 재경 담당 임원 등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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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현대차 사장. /조선DB




GS그룹에선 전통적으로 재무라인이 중용돼 왔다. 2005년 GS그룹이 LG와 계열 분리하기 전 허(許)씨 가문은 주로 재무, 관리 등 안살림을 맡았다. 구(具)씨 가문은 사업 확장 등 ‘바깥일’을 하며 경영을 주도했다. 지난해 말 부회장으로 승진한 정택근 ㈜GS 부회장은 LG상사 경영기획팀장, LG상사 재경팀장 상무, LG유통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 등을 역임했다.

이전 부회장들도 재무라인이었다. 그룹 내에서 '재무 천재'로 불렸던 서경석 전 ㈜GS 부회장은 국세청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해 회장실 재무팀장, LG투자신탁운용 사장, LG투자증권 사장 등을 지냈다. 나완배 부회장도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으로, 자금조달 부분에서 뛰어난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 “위기 때는 곳간지기 중용해 경영”

재계에서는 위기 때 재무라인이 부상하는 경향을 보인다. 삼성그룹은 사상 처음의 총수 공백을 메워야 하며 현대차그룹은 중국 시장 판매 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 주도로 '딥체인지(근본적인 변화)' 경영 방침에 맞춰 사업 재편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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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반(反)재벌 정서가 강한 정부에서 재계에서 재무라인이 중용돼 왔다고 말한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반재벌 정서와 대선 자금 수사 등으로 총수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기 힘들 때 기업의 돈 흐름을 꿰고 있는 재무라인을 통해 보고를 받고 지시했다"면서 "기업에 대한 감시가 심할수록 돈 관리에 신경을 쓰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한동희 기자(dwis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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