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문건 공개 정도에 따라 단계별 ‘거짓 대응 시나리오’ 마련
<한겨레> 첫 보도 이후 언론·검찰에 거짓말…검찰은 무혐의
박원순 서울시장 <한겨레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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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2013년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문건’이 외부에 공개되기 전에, 문건의 유출 사실을 파악하고 ‘거짓 대응 시나리오’를 작성했던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문건을 보도한 언론에는 작성 사실을 부인하고 이어진 수사에도 거짓말로 대응했으며,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 검찰도 사건을 각하 처분했다. 당시 진행됐던 ‘대선 댓글 개입’ 사건 수사방해와 닮은꼴이다. <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국정원 국익전략실은 2013년 5월11일 ‘서울시장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 및 대응방향’, ‘반값등록금 운동 차단’ 등 국정원 문건 13건이 외부로 유출됐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 작성 시점은 <한겨레>가 박원순 문건을 처음 보도하기 4일 전으로, 문건 외부 유출을 파악하고 이에 대비하는 차원이었다.
보고서는 민주당 출입 정보담당관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해, 외부에서 문건 내용을 문제 삼으면 어떻게 대응할지 등을 정리한 내용을 담았다. 또 보고서는 반값등록금 문건 등을 언급하며 “포퓰리즘을 비판하는 건전한 내용이지만,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과 정동영 민주당 의원의 실명을 언급한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국정원은 2011년 6월 작성한 ‘좌파의 등록금 주장 허구성 전파로 파상공세 차단’ 문건에서 두 의원을 ‘종북좌파인사’로 규정한 바 있다.
국정원의 ‘거짓 대응 시나리오’는 문건 내용이 외부에 얼마나 공개되는지에 따라 3단계 대응 방안을 담았다. 국정원이 작성한 문건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방안, ‘국정원 주 임무가 망국적 포퓰리즘으로부터 국민 인식을 바로 세우는 것인 만큼, 이에 대한 방어 심리전을 하다가 논란이 생겼다’는 취지로 대응하는 방안, 마지막으로 모든 문건이 공개될 경우 ‘전 정권의 일이지만, 이를 근절하는 쇄신의 계기로 삼겠다’고 밝힌다는 최후의 시나리오 등이 담겼다.
이후 국정원 대응은 대부분 사실을 부인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2013년 5월 <한겨레>의 문건 확인 요청에 “국정원에서 작성하지 않은 문건일 가능성이 있다”고 거짓말로 대응했고, 지난해 8월 국정원 작성 의혹이 또다시 불거졌을 때도 보도자료를 내어 “사실무근”이라고 거듭 허위 반박했다. 검찰 수사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2013년 10월 이 문건들과 관련해 민주당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9명을 고발한 사건을 각하 처분했다. 당시 국정원은 검찰의 사실조회 요청에 대해 “우리가 작성한 것이 아니고, 내용도 사실과 다르다”고 회신했다. 검찰은 이를 바탕으로 ‘혐의없음’ 처분했다.
결국 최초 보도 이후 4년이 지난 올해 9월에야, 국정원 적폐청산 티에프(TF) 조사를 통해 문건 작성자가 국정원이라는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검찰은 최근 이 ‘거짓 대응 시나리오’를 담은 해당 보고서를 확보하고,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지 등을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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