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들어서 관료 출신들이 가던 금융기관장 자리를 민간 출신이 속속 채우고 있다. 금융권에선 '관료 배제'라는 얘기마저 나오면서 앞으로 이어질 기관장 인사에서도 이같은 추세가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새 정부 들어 금융권 기관장 인사에 '관료 출신→민간 교체'라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민간 출신 발탁의 첫 단추는 금융감독원장이었다. 금감원장은 업무의 특성상 설립 후 단 한 차례도 민간에게 허락된 자리가 아니었다. 김조원 전 감사원 사무총장(현 한국항공우주산업 사장)이 내정 단계까지 가면서 새 정부에서도 이 기조는 유지되는 듯 했다. 하지만 금감원장에 최흥식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가 임명됐다. 첫 민간 출신 금감원장의 탄생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민간 출신들이 금융기관장 자리를 휩쓸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최 원장의 금감원장 임명은 경기고 동문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강력한 천거' 때문이었다는게 금융권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기관장 인사에서 민간 출신들이 잇따라 선출되거나 유력해지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관료 출신'과 '내부 출신'간 갈등을 벌이며 파행을 겪던 수협은행장에는 이동빈 전 우리은행 부행장이 선출됐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수협은행장은 2009년 이후 내리 두번 관료 출신이 맡았던 자리다. 신임 사장 선출 작업이 진행 중인 서울보증보험과 주택금융공사 사장 역시 관료 대신 민간 출신이 유력한 상황이다. 공적자금 투입기관인 서울보증보험과 정책 모기지 상품을 다루는 주택금융공사는 주로 관료 출신들이 사장을 맡아 왔다.
증권 유관기관으로 사장이 공석 상태인 코스콤도 마찬가지 추세다. 코스콤은 한국거래소가 최대주주로 설립 이후 역대 사장 13명 중 8명이 관료 출신이었다. 증권금융은 아직 관료 출신 카드가 살아 있지만 민간 교체 가능성도 거론된다. 증권금융은 2000년 이후 7명의 사장 중 5명이 관료 출신이었다.
사실상 새 정부 들어 이뤄진 인사 중 금융위원회 출신이 선임된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 기획재정부 출신인 은성수 수출입은행장을 제외하면 관료 출신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민간 강세 현상은 금융권을 바라보는 새 정부의 시각을 반영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여당측 관계자는 "그동안 모피아들이 금융기관장들을 너무 독식해 왔다는 인식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제는 바꿀 때도 됐다"고 말했다.
반면 '관피아'(관료+마피아) 논란으로 민간으로 전부 교체됐던 금융협회장에는 오래전 관직에서 퇴직한 이른바 '올드보이'들이 강세다. 이미 김용덕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손해보험협회장에 선출됐고 은행연합회장, 생명보험협회장 등에도 올드보이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다만 올드보이 강세가 '민간'을 다시 '관료 출신'으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용덕 회장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했고 은행연합회장에 거론되는 홍재형 전 부총리는 현 여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인사여서 '관료 출신'이라기 보단 '코드 인사'의 성격도 강하다는 것. 게다가 '올드보이 귀환'에 금융권 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민간 발탁이 관치금융 척결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한 민간금융연구소 관계자는 "관료 출신들을 배제한다고 해도 그 자리를 새 정부측과 인연이 깊은 민간 출신들로 채운다면 결국 관치금융은 마찬가지 아니겠느냐"며 "새 정부의 금융정책이 금융의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시장에 대한 직접 개입까지 필요하다는 것이어서 관치금융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진형 기자 jh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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