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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기고]연구소 밖 시민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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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워싱턴대학 연구진이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를 일으키는 원인 바이러스인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구조를 연구하던 중 큰 난관을 맞게 된다. HIV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원숭이 바이러스 구조를 알아내기 위해 수 년 간의 엑스레이 데이터를 모았는 데 그 자료가 너무 방대해 분석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

연구자들은 고민 끝에 이 데이터를 한 퍼즐 사이트에 오픈데이터로 공개했다. 해결하기 힘들었던 HIV 구조 문제를 하나의 게임처럼 만들어 사람들에게 풀어보도록 했던 것. 놀랍게도 이 게임에 참가했던 한 팀이 10년 동안 과학자들을 쩔쩔매게 했던 HIV 단백질 구조를 단 3주 만에 찾아냈다. 연구팀은 5만7000여명의 퍼즐게임 참여자들을 공저자로 올린 연구논문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머니투데이

이와 같이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과학연구의 일부, 혹은 모든 과정에 참여하는 활동을 ‘시민과학’이라고 한다. 과학은 더 이상 실험실, 연구소, 대학에 머물러 있는 연구자만의 주제가 아니다.

일반 시민들이 직접 데이터 수집에 참여하기도 하고, 데이터를 제공하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나아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문제점에 대해 아이디어를 내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되고 있다.

시민과학은 시민들의 참여 정도에 따라 기여형, 협업형, 공동프로젝트형으로 나눌 정도로 세분화되고 있다. 기여형은 전문가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의하고, 시민들은 주로 데이터 수집 과정에 참여한다. 헬스데이터와 같이 센서를 통한 데이터 수집이 대표적이다.

협업형은 기여형과 비슷하게 전문가들이 문제를 정의하지만, 시민들이 프로젝트 디자인, 데이터 분석, 결과 공유의 단계까지 광범위하게 참여한다. 공동 프로젝트형은 과학자와 시민들이 함께 디자인하고 연구의 모든 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형태를 일컫는다. 관련한 예로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용자가 직접 나서서 현장을 중심으로 해결해 나가는 사용자 참여형 연구 프로그램 ‘리빙랩’을 들 수 있다.

시민과학을 보다 활성화하기 위해선 우선 시민들의 다양한 눈높이에 맞는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논문 내용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내용을 시각화하고 요약해 특정 연구가 갖는 의미를 좀 더 빨리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보 접근성의 개선도 필요하다. 논문은 해마다 9% 비율로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연구자들은 전문과학 지식을 공부하는 시간보다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수집·탐색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연구자들이 이러한데 관심 있는 연구를 해보려는 일반 시민과학자들이 겪는 고충은 말할 것도 없다.

이에 대한 해법은 '데이터 마이닝' 고도화에서 찾을 수 있다. 대량의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검색해 새로운 경향이나 패턴을 발견하는 데이터 마이닝 기술은 현재 전문가 수준의 정보 획득을 단순히 보조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기술을 발전시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원하는 지식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지름길을 열어주는 정부 차원의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과학의 영역이 연구실 밖으로 넓어지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과학에 많은 시민들이 참여한다면 전문가적 영역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문제도 더 빠른 시간에 해결할 수 있다. 이러한 시민과학을 성공으로 이끄는 열쇠는 학술 정보들을 참여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다양한 포맷으로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다.

김재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첨단정보융합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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